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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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05-12 17:14 수정일 : 2018-01-04 11:21

하동정씨시조 및 하동정씨본관의 유래

하동(河東)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최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 다사군(多沙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 때 하동(河東)으로 고쳤고 고려 현종(顯宗) 때 남해현(南海縣)을 병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라 하다가 후에 분리하였고 1702(숙종 28) 섬강(蟾江)을 관문(關門)으로 삼고 진주(晋州)의 악양(嶽陽) 화개(花開) 등이 이에 속하였다.

1703(숙종 29) 치소를 진답면 두곡(豆谷)에 설치하고 1704(숙종 30) 부로 승격, 1730(영조 6) 치소를 나동(螺洞)으로 옮겼으며 1895(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1915년 곤양군(崑陽郡)의 서면(西面)과 금양면(金陽面)을 편입하였고 1939년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하동정씨(河東鄭氏)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연원(淵源)을 알 수 없는 여섯 계통(系統)분류(分類)하고 있으나, 현존(現存)하는 하동 정씨의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같이 하면서 계통(系統)을 달리하는 다음 세 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 계통(系統)은 삼한(三韓)의 말기(末期)에 하동(河東)으로 이거(移居)하여 고려 초(高麗初)에 호장(戶長)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始祖)로 하고, 그의 후손 석숭(碩崇)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온 계통이다.

통칭하여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또는 밀직공파(密直公派)라 부르며 전체 하동정씨의 60%가 이파에 속한다.

둘째 계통은 고려 초에 하동지방(河東地方)의 민병(民兵)을 주관(主管)하던 사족(士族)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高宗)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도첨의좌정승(都僉議左政?) . 검교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 등을 지낸 정 응(鄭 膺)을 시조(始祖)로 하는 계통이다. 정승공파(政丞公派)라 부르며 하동정씨의 30%가 이파이다.

셋째 계통은 고려 숙종(肅宗)과 명종조(明宗朝)에 걸쳐 다섯 왕조에 벼슬을 지냈고 정헌대부(正憲大夫) . 지예부사(知禮部事) .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한 후 하동백(河東佰)에 봉해진 정손위(鄭遜位)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예부공파(禮部公派)라 부르며 전체 하동정씨의 10%가 이파에 속한다.


득성(得姓)의 연원(淵源)은 신라 유리왕(新羅 儒理王) 9(서기 32) 서라벌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육부촌(六部村)에 사성(賜姓)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근원을 두고있다.

육부 중 하나인 본피부(本彼部)에 정씨성(鄭氏姓)을 사성(賜姓)하였다 하였으니 당시의 본피부를 이루고 있는 모든 부족(部族)이 정씨성(鄭氏姓)을 하사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뚜렷한 시조를 찾을 수가 없다.

하동정씨(河東鄭氏)90%이상을 찾이하는 평장사공파와 정승공파 모두 고려개국초(高麗開國初)의 정도정(鄭道正)과 고려중엽(高麗中葉)의 정응(鄭 膺)을 시조로 하고 있어 신라(新羅) 당시의 인물에 연관 짖지 않고 있다.

시조 정손위(始祖 鄭遜位)파는 최근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왕을 옹립한 육부촌장(六部村長)중의 한분인 지백호(智佰虎) 감문왕(甘文王 추봉)의 후손임을 기록하고 시조 정손위가 지백호의 40대손(代孫)으로 세계(世系)하고 있으나 본관시조(本貫始祖)는 정손위 (鄭遜位)로 하여 대수를 세고 있다.

따라서 하동정씨(河東鄭氏)는 동관삼정(同貫三鄭)으로 삼시조(三始祖)를 각위(各位)하여 대삼파(大三派)로 분류되나 대종회(大宗會)를 비롯 모든 종중행사(宗中行事)는 대삼파(大三派)가 합동으로 하고 있다.


씨족사 개요(氏族史 槪要)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손위(遜位)의 아들 세유(世裕)가 고려 때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를 거쳐 형부 상서(刑部尙書)를 지냈고, 세유(世裕)의 아들 숙첨(叔瞻)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은 평장사(平章事) 숙첨(叔瞻)의 아들로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 ()과 그의 손자인 평장사(平章事) 하천군(河川君) ()와 증손 금오상주국(金吾上柱國) 문하첨의찬성사(門下僉議贊成事) 승경(承慶)이 있고 문충공(文忠公) 지연(芝衍)은 중국어에 능통한 외교가로 도첨의 찬성사(都僉議贊成事)요 그 아우 난연(蘭衍)은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난연의 아둘 성()은 금성군(錦城君)이요 성의 아들 경열공(景烈公) ()는 문무겸전의 해도 원수(海島元帥)로 우리 나라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승경의 손 희()는 직제학(直提學)으로 정몽주의 제자로 절개를 지켜 두분동 72(杜門洞 72)으로 이름높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문무 양쪽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직제학 희()의 아들 초()는 공판이판(工判吏判)과 예문관 집현전(藝文館集賢殿) 양관대제학 (兩館大提學)으로 문학,농사,아악,천문,과학 등의 학문이 뛰어나 세종성업(世宗盛業)의 큰 기둥이었고 문성공(文成公)인지(麟趾)는 태종이래 (六朝)를 섬기며 대제학(大提學) 영의정(領議政)에 이르기까지 천문,역법,아악,문학에 뛰어나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을 세우는 등 조선조의 대표적 학자요. 정치가였다.

()의 손 문절공(文節公) 수충(守忠)은 박통경사(博通經史)하고 조행(操行)으로 이름높고 좌찬성(左贊成)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고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여창(汝昌)은 당대 유종(儒宗)이요.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꼽히며 문묘배향(文廟配享)十八(十八賢)의 한분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 휘하의 선봉장(先鋒將) 충장공(忠壯公) ()과 이괄난을 평정한 부원수(副元帥) 금남군(金南君) 충무공(忠武公) 충신(忠信)과 정묘(丁卯) 병자(丙子) 호란(胡亂)시 청군(淸軍) 수 천명을 죽이고 용골산성을 사수한 절제사(節制使) 양무공(襄武公) 봉수(鳳壽) 기수(麒壽) 형제는 명장(名將)으로 꼼히며 임진왜란시 의병장으로 절사(節死)한 충민공(忠敏公) () 충열공(忠烈公) 기린(麒麟) 충장공(忠壯公) 득열(得說) 참판공(參判公) 응린(膺麟) 판서공(判書公) ()가 이름 높고 병자호란 후 심하(深河)에서 절사(節死)한 양무공 일문(一門)의 기남(奇男) 순남(順男) 시창(始昌) 사검(思儉) 충신정려(六忠臣旌閭)와 문헌공 자손의 충신정려(九忠臣旌閭) 문절공 자손의 충효열정려(六忠孝烈旌閭)가 있으며 지함(之咸) 지영(之英)형제와 매부 정한산의 한날 동시 무과합격을 기념한 오고정(五鼓亭)이 있다. 경흠(慶欽)과 충엽(忠燁)은 당대의 서화가로 이름 날렸고 이름난 실학자(實學者)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한 상기(尙驥)와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를 제작한 항령(恒齡) 부자(父子) 등이 명문의 대를 이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동정씨(河東鄭氏)는 남한에 187,1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五文)

문충공(文忠公) () 지연(芝衍) 밀직공(國龍)의 장자

문경공(文景公) () () 묵은공()의 차자

문성공(文成公) () 인지(麟趾) 하성 부원군(興仁)의 장자

문절공(文節公) () 수충(守忠) 하원군()의 자

문헌공(文獻公) () 여창(汝昌) 좌윤공(六乙)의 장자

(九忠)

경열공(景烈公) () () 금성군()의 손자

양양공(良襄公) () () 경렬공()의 손자

충장공(忠壯公) () () 장령공(希周)5 세손

충민공(忠敏公) () () 경렬공()8 세손

충장공(忠莊公) () 득열(得說) 문성공(麟趾)

충렬공(忠烈公) () 기린(麒麟) 경렬공()7 세손

충무공(忠武公) () 충신(忠信) 경렬공()9 세손

양무공(襄武公) () 봉수(鳳壽) 한림공()8 세손

충결공(忠潔公) () 택뢰(澤雷) 충장공(得說)의 아들

十三봉군(十三封君)

하천군(河川君) () () 정승공()의 손자

금성군(錦城君) () () 좌윤공(蘭衍-난연)의 자

하성 부원군(河城府院君) () 흥인(興仁) 문성공의 아버지

하원군(河原君) () () 묵은공의 3

하동 부원군(河東府院君) () 인지(麟趾) 문성공

하원군(河原君) () 수충(守忠) 하원군()의 자

하성 부원군(河城府院君) () 현조(顯祖) 문성공의 차자

하남군(河南君) () 숭조(崇祖) 문성고의 3

하동 부원군(河東府院君) () 세호(世虎) 문성공의 5자인 상조(尙祖)의 차자

금천군(錦川君) () () 경렬공 8 세손

금남군(錦南君) () 충신(忠信) 금천군()의 자

금평군(錦平君) () () 금남군(忠信)의 자

청하군(淸河君) () 한기(漢璣) 내시(內侍)로 임난 호성 공신

명장(四名將)

경렬공(경렬공) () () 금성군(-)의 손자

충장공(충장공) () () 장령공(희주-희주)5 세손

충무공(충무공) () 충신(충신) 경렬공(-)9 세손

양무공(양무공) () 봉수(봉수) 한림공(-)8 세손


하동정씨조상인물

정도정(鄭道正) : 신라말 하동호장(河東戶長)으로 단련향병하여왕건(王建)을 도와 고려건국에 큰공이 있어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정손위(鄭遜位) : 고려 숙종,예종,인종,의종,명종의 오조(五朝)에 벼슬하여 지예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하동백(河東伯)에 봉해졌다.

정세유(鄭世裕) : 고려 의종조 문과급제 후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내고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다.

정응(鄭 膺) : 고려 고종조 문과 후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과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고 몽고의 침략으로 강화도 천도 후 외교사절로 송()과 원()차례 사신(使臣)으로 파견되었다.

정숙첨(鄭叔瞻) : 세유의 아들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고 거란의 침범에 중군원수(中軍元帥)가 되어 출전 하였다. 최충헌(崔忠獻)의 아들 최 우(崔 瑀)의 장인이며 뒷날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정국룡(鄭國龍) : 문충공(文忠公) 지연의 아버지로 문과 후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오르다. 평장사 공파의 모든 자손이 후손이 된다.

정지연(鄭芝衍) : 국룡의 장자. 중국어에 능통. 여러 차례 원()에 사신 하였으며 외교의 공이 컸다. 글과 그림에 뛰어나고 도첨의 찬성사(都僉議贊盛事)와 판선부사(判選部事)를 지내고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내렸다.

정난연(鄭蘭衍) : 지연의 아우. 과거에 올라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고 중경좌윤(中京左尹)에 추증되었다.

정안(鄭 晏) : 숙첨의 아들로 고려 고종조 학자, 음양,산술,의약,음률 등 모든 분야에 밝고 국자제주(國子祭酒)에 임명되다.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오르고 사재를 털어 대장경(大藏經)의 일부를 부담 간행하기도 하였다. 집권 권신(權臣) 최항(崔沆)이 생질이었는데 그가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비방하다가 미움을사 죽임을 당하였다.

정익(鄭 翊) : 고려조(高麗朝)에 흥위위 대호군(興威衛大護軍)을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정유(鄭 宥) : 고려 때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역임하였다.

정을귀(鄭乙貴) : 고려조(高麗朝)에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다.

정견(鄭 堅) : 고려(高麗)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다.

정계(鄭 綮) : 고려조(高麗朝)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하천군(河川軍)에 봉해졌다.

정지상(鄭之祥) : 원나라에 자주 왕래하다가 원나라에 머물던 강릉대군(江陵大君) (: 공민왕)를 시종, 1354(공민왕 3) 감찰지평(감찰지평)에 등용되었다. 호부시랑(戶部侍郞),뒤에 판사(判事)에 이르렀다.

정승경(鄭承慶) : 고려 때 금오상주국(金吾上柱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역임하였다.

정희(鄭 熙) :()는 묵은(默隱), 정몽주(鄭夢周)의 문인. 1376(우왕 2) 문과(文科)에 급제,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1391(공민왕 2)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다. 포은선생과 함께 끝까지 고려를 지키려다 해도(海島)9년간 유배 후 벼슬을 사양하고 절개를 지켰다. 두문동 72(杜門洞七十二?)으로 꼽히며 개성의 두문서원(杜門書院) 광주 화담사, 경현사에 배향되었다.

정지(鄭 地) : 고려(高麗) 호는 퇴암(退菴) 시호는 경열(景烈) 금성군(錦城君) ()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와 문과(文科) 예의판서(禮儀判書) 전라도 순문사(巡問使)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파하고 해도원수(海道元帥)가 되어 많은 전함을 건조하고 화포(火砲)를 실전에 활용 여러 차례 왜구와 왜적함선을 격파 대승하였다. 큰 공으로 양광,전라,경상,강릉도 도지휘처치사(楊廣,全羅,慶尙,江陵道 都指揮處置使)에 오르고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제수되었다. 광주 경열사(光州景烈祠)에 배향되고 우리나라 해군(海軍)의 아버지로 일컫는다.

정경(鄭 耕) : 고려(高麗) 경열공 지()의 아들 문과(文科) 전라도 도절제사(都節制使)를 위시 의주,안동,전주 등 7개도 관찰사를 지냄.

정혼(鄭 渾) 초명은 종(), 지상(之祥)의 아들, 전리 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