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덕정씨시조(盈德鄭氏),정자영(鄭自英)

작성일 : 2017-05-12 08:49 수정일 : 2018-04-10 10:2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덕정씨(盈德鄭氏)의 시조(始祖) 정자영(鄭自英)은 봉례(奉禮)를 지낸 도(道)의 아들로,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학유(學諭)․직강(直講)․사예(司藝) 등을 지내고, 경연(經筵)에서 경사(經史)를 강론하자 그 박식한 지식에 세조(世祖)가 감동하여 장령(掌令)으로 발탁되었다.

1465년(세조 11) 사성(司成)․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시강원 우보덕(侍講院右輔德)을 지내고 이듬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거쳐 공조 참판(工曹參判), 1470년(성종 1)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특히 학문(學問)을 즐겼고 역학(易學)에도 밝았으며 후에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영덕(盈德)은 경상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야시홀(也尸忽)인데 신라(新羅) 때 야성현(野城縣)으로 고치고 고려(高麗) 초에 영덕으로 고쳐 현종(顯宗) 때 예주(禮州 : 寧海)에 예속시켰다. 1415년(조선 태종 15)에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현령으로 바꾸고, 1895년(고종 32) 승격하여 영덕군이 되었으며 1914년 영해군과 병합하였다.

그의 후손(後孫) 홍(泓)의 아들 영국(英國)은 1594년(선조 27)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兵曹佐郞)․장령(掌令)․보령 현감(保寧縣監)을 거쳐 부사직(副司直)을 지냈고, 이어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이 되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된 역대실록의 중간(重刊)에 참여하였다. 1606년 평안도 도사(平安道都事)․은계도 찰방(銀溪道察訪)을지내고, 이어 좌통례(左通禮)로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덕정씨(盈德鄭氏)는 남한(南韓)에 1,6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