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낭야정씨시조(瑯琊鄭氏),정선갑(鄭先甲)

작성일 : 2017-05-11 16:27 수정일 : 2018-04-18 15:5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낭야정씨(瑯琊鄭氏)는 중국(中國)에서 귀화해 온 성씨(姓氏)로 명(明)나라 세종(世宗 : 제12대 황제, 재위기간 : 1522~1566) 때 문연각 태학사(文淵閣太學士)를 지낸 정문겸(鄭文謙)의 증손 정선갑(鄭先甲)이 봉림대군(鳳林大君 : 후에 효종이 됨)을 배종(陪從)하고 동래(東來)하여 조선(朝鮮)에 귀화한 것이 시초가 된다.

「낭야정씨신유보(瑯琊鄭氏辛酉譜)」서문(序文)에 의하면 그는 1617년(명나라 만력 45) 산동성(山東省) 낭야(瑯琊)에서 출생하여 진사(進士)로 있다가 1644년(숭정 17) 명(明)나라가 청(淸)에 멸망되자 구국의거(救國義擧)를 하려다가 청군(淸軍)에게 포로가 되어 심양(瀋陽)에 끌려갔다. 수용중인 그곳에서 풍삼사(馮三仕)․황 공(黃 功)․왕이문(王以文) 등 9의사(九義士)와 함께 멸청복명(滅淸復明)의 동지(同志)로 결합(結合)하였는데, 이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의 볼모로 심양에 와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 일행을 만나 함께 합력도모(合力圖謨)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듬해 봉림대군을 배종하고 동래(東來)하여 조양루(朝陽褸) 남쪽 황조인촌(皇朝人村 : 지금의 연지동 1번지 부근)에 살면서 효종(孝宗 : 봉림대군)과 북벌밀계(北伐密計)를 추진중 1659년(효종 10) 왕(王)의 급서(急逝)로 북벌대계가 좌절되고 그리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조선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낭야(瑯琊)는 중국(中國) 산동성 청주부 제성현(山東省靑州府諸城縣) 근방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한(漢)나라 때부터 화려한 왕도정치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그 후 후손들은 150여 년간 황조인촌에 집단거주하면서 조정에서 베푸는 특별 후대(厚待)를 받아왔고,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을 보내준 명(明)나라 신종(신宗)의 은의(恩義)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肅宗)이 비원(秘苑)내에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어, 배향할 때 동래조 선갑(先甲)을 포함한 9의사(九義士)를 함께 배양하는 은전(恩典)이 내렸고, 대보단 수진관직(守直官職)을 9의사 자손에게 세수(世守)하도록 하였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낭야정씨(瑯琊鄭氏)는 남한(南韓)에 총 335가구, 1,0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