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고성정씨 시조(固城鄭氏),정가물(鄭可勿),고성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0 20:09 수정일 : 2019-02-08 15:4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고성정씨(固城鄭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 때 사람으로 누대(累代)에 걸쳐 철성(鐵城)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한 호족(豪族)의 후손 정가물(鄭可勿)이다.

그의 후손들은 선조(先祖)의 세거지(世居地)인 고성(固城)에 살면서 본관(本貫)을 고성(固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고성(固城)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부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6가야(六伽倻) 중 소가야(小伽倻)의 도읍이었는데 신라시대(新羅時代)에 고자군(固自郡)으로 불리다가 고려(高麗) 때 철성부(鐵城府)로 개칭되었으며, 조선(朝鮮) 때 고성현(固城懸)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고성군(固城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가물(可勿)의 아들 몽송(夢松)이 동정(同正)을 역임했고, 후손 세웅(世雄)은 훈도(訓導)를 지냈다. 세웅(世雄)의 아들 4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빛냈는데 그 중에서 장남 개청(介淸)이 뛰어났다.

개청(介淸)은 어려서 중이 되어 풍수설(風水說)을 배웠고 역학(易學)․율려(律呂) 등에 정통했으며 박 순(朴 淳)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또한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교정청(校正廳)의 낭관(郎官)을 거쳐 곡성 현감(谷城縣監)을 지냈으며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 때 그와 교분이 두터웠던 탓에 경원(慶源)으로 유배도중 죽었다.

그 외 인물로는 참봉(參奉)을 지낸 대청(大淸)과 별좌(別坐) 응청(應淸)이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성정씨(固城鄭氏)는 전국에 1,53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고성정씨조상인물

정몽송(鄭夢松) 조선(朝鮮) 때 동정(同正)을 역임하였다.

정세웅(鄭世雄) 조선(朝鮮)에서 훈도(訓導)를 지냈다.

정개청(鄭介淸) 1529(중종 24)~1590(선조 23) 자(字)는 의백(義伯), 호(號)는 곤재(困齋). 원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서 어려서 중이 되어 풍수설(風水說)을 배우고 역학(易學)․율려(律呂)에도 정통하였다. 심의겸(沈義謙)․홍인경(洪仁慶)을 섬긴 것이 인연이 되어 박순(朴 淳)에게서 10여 년간 배웠다. 1574년(선조 7) 천거로 벼슬길에 올라 1585년 신설(新設)된 교정청(校正廳)의 낭관(郎官)을 거쳐 1587년 영릉 참봉(英陵參奉)에 이어 육품에 올랐으며, 이해 이산해(李山海)의 추천으로 곡성 현감(谷城縣監)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정여립과 교분이 두터웠던 탓으로 연루되어 경원(慶源)으로 유배도중 죽었다.

정대청(鄭大淸) 호(號)는 관재(寬齋).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정응청(鄭應淸) 조선(朝鮮) 때 별좌(別坐)를 역임하였다.

정민흥(鄭敏興)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