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용궁전씨(龍宮全氏),용궁전씨시조,전방숙(全邦淑),용궁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9 16:40 수정일 : 2019-08-02 14:05

 

고려시대 인물


전방숙(全邦淑) : 용궁전씨 시조, (1252~1308)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 등 여러 관직을 거처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용성(龍城) 부원군(府院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용성(龍城)은 용궁(龍宮)의 구호(舊號)로 후손(後孫)들이 용성(龍城) 축산(竺山)을 관향으로 분관지(分貫地)로 삼았다.
전정민(全正敏) :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중서성(中書省) 사인(舍人)을 역임했다.
전충경(全忠敬) :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전법(典法) 총랑(摠郞)을 역임하였다.
전대년(全大年) :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판도(版圖) 총랑(摠郞)을 역임했다.
전진(全 璡) : 정순대부 옹양군 민부전서를 역임했다.

전원발(全元發) : (1315~1354) 호(號)는 국파(菊坡)이다. 문과(文科) 현양공거에 등과(登科)한 후 원나라 과거에 장원(壯元)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병부상서(兵部尙書) 겸(兼)집현전(集賢殿) 태학사(太學士)를 역임하고 재임 중에 원나라 황제에게 고국 고려에서 원나라에 과다한 조공의 폐단을 진정하여 금(金)은(銀)견(絹)마(馬)의 조공량을 경감받았다. 만년에 환국하게 되니 공민왕(恭愍王)이 그 공(功)으로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조선조 영조 34년에 국가에서 자손(子孫)들에게 물침(勿侵)군역(軍役)하라는 예조(禮曹) 완문(完文)이 내렸다.


 조선시대 인물


전한(全 僩) : 고려 말(末)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사복시(司僕寺) 정(正)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했다.
전직(全 直) : (1411~1419?) 조선 태종조 내담시 판관(判官),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양주(楊洲)도호부사(都護府使) 병조(兵曹) 참지사(參知事)를 역임했다.
전강(全 强) : (1407~1437) 조선 태종조에 교하(交河), 영흥(永興)현감(縣監), 영흥(永興) 대도호부(大都護府) 판관(判官)을 하였고 의성(義城)현감 재임 중에는 주곡(主穀)인 볍씨를 시험 재배하여 좋은 품종을 재량하여 생산량이 증가해 세종대왕이 각도 감사에게 전지(傳志)하여 개량(改良) 볍씨를 전국에 보급시켜 미곡(米穀)증산(增産)에 크게 공헌했다.
전근(全 謹) : (1380~1437) 조선 태종조에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의금부도사(都事)를 역임했고 청백리(淸白吏)로 녹선(祿選)되었다.
전경(全 敬) : (1380~1439) 조선 태종조에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광주(光州)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전중윤(全中倫) : 조산대부 軍資監 正을 역임했다.
전중권(全仲權) : (1405~1432) 세종조에 문과에 등과하여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이조(吏曹) 정랑(正郞) 00군수(00郡守)를 거쳐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역임했다.
전중양(全仲養) : (1405~1432) 문과(文科)에 등과(登科) 후(後) 병조(兵曹) 정랑(正郞)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역임했다.
전중일(全仲逸) : 보령(保寧)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전순조(全順祖) : 통훈대부(通訓大夫) 평택(平澤)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전영령(全永齡) : (1432~1480)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한 후(後) 병조(兵曹) 정랑(正郞)과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역임했다.
전영년(全永年) : 이조(吏曹) 정랑(正郞)을 거쳐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을 역임(歷任)했다.
전회근(全懷瑾) : (1474~1547)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충무위(忠武衛) 사직(司直)을 역임했다.
전회옥(全懷玉) : (1477~1540) 자(字)는 가(可)청(淸)이고 호(號)는 성제(誠齊)이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의금부(義禁府)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전복초(全復初) :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호군(護軍)을 역임했다.
전광희(全光熙) : (1558~) 자(字)는 조보(조甫)이고 정략장군을 역임했다.
전혼(全 緷) : (539~1607) 자(字)는 경완(景完)이고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를 역임했다.
전이성(全以性) : (1577~1646) 자(字)는 성지(性之)이고 호(號)는 운계(雲溪)이다. 한강정술, 우복 정경세 양(兩) 선생의 문하생(門下生)으로서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한 후(後) 종부시(宗簿寺) 정(正) 겸(兼)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 신령, 고성 합천 현간을 거쳐 부평(富平) 부사(府使)를 역임하였으며 고성 현감 재임사 청백리로 녹선(祿選)되어 거사비(巨事碑)세워졌으며 인조활란 때 황해도 독향아사로 활약한 공업(功業)으로 진무원종공신에 책록(策祿)되었다.
전삼락(全三樂) : (1562~1624) 자(字)는 군서(君瑞)이고 호(號)는 정와(定窩)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시(時) 창의(倡義)하여 토적(討賊)한 공(功)으로 원종공신에 책록되고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예조(禮曹) 좌랑(佐郞), 순안 현령을 역임했다.
전삼익(全三益) : (1566~1592) 자(字)는 군보(君輔)이고 호(號)는 조곡(棗谷)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시(時) 선무원종공신에 책록(策祿)되고 선공감 첨정 경상도판관 봉화 현감 경상도 진영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