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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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05-09 16:09 수정일 : 2019-02-12 14:54

옥천전씨시조 및 옥천전씨유래(본관)

옥천 전씨(玉川全氏)의 관조(貫祖) 전유(全侑)는 환성군(歡城君) 전 섭(全 聶 : 전씨의 도시조)의 27세손(世孫)으로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때 밀직부사(密直副使)․판도판서(版圖判書)․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관성(管城 : 옥천의 옛 지명)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정선 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옥천(沃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옥천(沃川)은 충청북도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 고시산군(古尸山郡)이라 불렸으나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관성군(管城郡)으로 고쳤고 고려 현종 때에는 경산부(京山府)에 예속되었다가 인종(仁宗) 때에 현(縣)이 되었다. 1181년(명종 12)에 일시 폐현되기도 하였으나 1313년(충선왕 5) 주(州)로 승격, 옥주(沃州)라 했고 경산부의 소속인 이원(伊源)․안읍(安邑)․양산(陽山)의 3현(縣)을 받아들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옥천으로 개칭하고 관할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변경하였다. 1895년(고종 32)에는 군이 되었고, 1914년에는 신라시대에 굴산현(屈山縣)․기산(耆山)으로 불리었던 청산군(靑山郡)을 병합하고, 학산면(鶴山面)․용화면(龍化面)․양산면(陽山面)은 영동군(永同郡)에 이관하였다. 1929년에는 이내(伊內)․이남(伊南) 두 면을 합하여 이원면(伊院面)으로 하고 청서(靑西)․청남(靑南) 두 면을 합하여 청성면(靑城面)으로 개편하였으며 1949년에는 옥천면이 읍(邑)으로 승격하였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高麗) 때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지(智)와 판도판서(版圖判書) 숙(淑)이 유명했으며, 조선조(朝鮮朝)에서는 희철(希哲)과 여림(汝霖)의 아들 식(湜)이 뛰어났다.

희철(希哲)은 조선 세종(世宗) 때 생원(生員)으로 진사시(進士試)를 거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단종(端宗) 때 상장군(上將軍)으로 있다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王位)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였다. 단종(端宗)이 영월(寧越)에서 죽자 삼년상(三年喪)을 지냈으며, 임종(臨終) 때에는 자손(子孫)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영월에 찾아가 단종릉(端宗陵)에 참재하라고 유언(遺言)했다고 한다.

그 뒤 인조(仁祖) 때에 와서 익희(益禧)가 그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하여 방산서원(方山書院)과 공주(公州) 숙모전(肅慕殿)에 배향(配享)하였다.

식(湜)은 류성룡(柳成龍)․장현광(張顯光)의 문하(門下)에서 학문(學問)을 연마하고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光海君)의 실정(失政)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정경세(鄭經世)․이 준(李 埈) 등과 산수(山水)를 유력(遊歷)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예조 정랑(禮曹正郞)에 등용되어 기주관(記注官)․지제교(知製敎) 등을 겸했으며, 병조 참의(兵曹參議)․병조참지(兵曹參知)에 이르러 이 귀(李 貴)와 장 만(張 晩)의 실책을 논책한 후 낙향(落鄕)했다가 1628년(인조 6)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거쳐 대사간(大司諫)․부제학(副提學)․대사헌(大司憲) 등에 임명되었으나 번번히 사퇴하였는데, 뒤에 좌의정(左議政)에 추정되고 충간(忠簡)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그 밖의 인물(人物)로는 인조(仁祖) 때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에 뛰어났던 명룡(命龍)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에 올랐으며, 뇌(磊)의 아들인 익희(益禧)는 인조(仁祖)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있으면서 권신(權臣) 김자점(金自點)의 죄를 탄핵하다가 외직(外職)으로 물러났으나, 당시 왕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은 조선조(朝鮮朝) 정치사(政治史)에 백미(白眉)를 이루었다.

1641년(인조 19)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장흥(長興)․선산 부사(善山府使) 등을 지내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고 서예(書藝)에도 능통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순절(殉節)한 극항(克恒)은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을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으며, 이조 참판(李曹參判)을 역임한 황(煌)은 부사(府使)를 역임한 유담(有淡), 목사(牧使)를 지낸 룡(龍), 도사(都事) 충립(忠立)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옥천전씨(沃川全氏)는 남한(南韓)에 총 47,68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천전씨(沃川全氏)-옥천전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

전유(全 侑) (13141330) : 봉인대부 밀직부사(密直副使) 판도(版圖)판서(判書)를 역임하였으며 나라에 크게 공업(功業)이 있어 관성군(管城君)에 피봉(皮封)되었다. 관성(管城)은 지금의 옥천(沃川)으로 후손(後孫)들이 관향(貫鄕)으로 정하고 분관지(分貫地)로 삼았다.

전광운(全光韻) (1345) : 정의대부 판비서감사 이부전서(吏部典書)를 역임했다.

전숙(全 淑) (13451393) :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관성군(管城君)에 피봉(皮封)되었다. 고려(高麗)의 국운(國運)이 다함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관성(管城:옥천)으로 낙향하여 문선동에 은거(隱居)하면서 고절(高節)을 지켰으며 향수(享壽) 101세로 별세하여 세인들이 공이 기거(起居)하던 기사천(棄仕川)을 기사천(耆士川)으로 지명의 이름을 바꾸었다.

전비(全 備) : 봉산대부 사수시 소경(小卿)을 역임했다.

 


조선시대 인물

전도(全 都) : 조봉대부 전의 첨정을 역임했다.

전오이(全五二)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호군(護軍)을 역임했다.

전오례(全五禮)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했다.

전오용(全五用) : 남해(南海)현령(縣令)을 역임했다.

전례(全 禮) (13971428) : 선차지인 가각부록사를 역임했다.

전지(全 智) (13991465) : ()는 성함(聖涵)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문과(文科)에 등과(登科) 후 여러 관직(官職)을 거처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다.

전림(全 林)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사직(司直)을 역임했다.

전효순(全孝順) (14331508) :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청석현감(靑石縣監)을 역임했다. 재임중 선정을 배풀어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져 있다.

전희문(全熙文)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전희식(全希軾)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했다.

전희로(全希輅) : 함열(咸悅)현감(縣監)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