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흥양장씨시조(興陽張氏),장선익(張善翼),흥양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16:50 수정일 : 2018-08-30 15:3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흥양장씨(興陽張氏)의 시조(始祖)는 도시조 장정필(張貞弼 : 문헌공)의 5세손이며, 이부(吏部) 시랑(侍郞) 지현(之賢)의 네째 아들인 장선익(張善翼 : 초명(初名)은 현익(玄翼))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가 고려(高麗)에서 벼슬을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흥양(興陽 : 고흥의 옛 지명)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흥양(興陽)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었다고 한다.

흥양(興陽)은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지방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名)으로, 고려 초에는 고이부곡(高伊部曲)이라 하였으며, 1285년(충렬왕 11)에 고흥현(高興縣)이라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395년(태조 4)에 보성군 조양현(兆陽縣)으로 개편되었다가, 1397년에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兵馬使)로 현감(縣監)을 겸임하게 하였다.

1441년(세종 23)에는 장흥부(長興府) 두원현(豆原縣)으로 바꾸고, 보성군 남양현(南陽縣)을 분할 편입하여 흥양(興陽)이라 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고쳐 군수(郡守)를 두었으며, 1914년 고흥군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선익(善翼)의 아들 정일(正鎰)이 고려에서 예부(禮部) 시랑(侍郞)를 지냈고, 손자 보초(保超)가 현령(縣令)을 역임하여 목사(牧使) 극명(克明 : 보초의 아들)․중랑장(中郞將) 명(明 : 정일의 손자이며, 보수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중흥(中興)시켰다.

그 외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원(元)과 철(哲)은 군수(郡守)를 지낸 원검(元儉)․부령(府令)을 역임한 인철(仁哲)․봉훈랑(奉訓郞)에 오른 송백(松栢)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흥양장씨(興陽張氏)는 전국에 총 60가구, 226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흥양장씨조상인물 

장정일(張正鎰) : 고려(高麗)에서 예부(禮部) 시랑(侍郞)을 지냈다.

장보초(張保超) : 고려(高麗) 때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장명(張 明) : 고려(高麗)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장극명(張克明) : 조선조(朝鮮朝)에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장원(張 元) : 조선(朝鮮)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장원검(張元儉) : 조선(朝鮮)에서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철(張 哲) : 조선(朝鮮)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장인철(張仁哲) : 조선조(朝鮮朝)에 부령(府令)을 역임하였다.

장송백(張松栢) : 조선(朝鮮)에서 봉훈랑(奉訓郞)에 이르렀다.

장희(張 希) :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