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송장씨시조(靑松張氏),장영민(張英旼),청송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16:22 수정일 : 2018-08-30 15:1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송장씨(靑松張氏)의 시조(始祖)는 도시조(都始祖) 정필(貞弼 : 충헌공)의 9세손으로 고려(高麗)에서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보(補)의 둘째 아들 장영민(張英旼)이다. 영민(英旼)은 고려 때 중추원사(中樞院事)를 지내면서 나라에 공(功)을 세워 청송군(靑松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청송(靑松)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청송(靑松)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중부 동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청기현(靑己縣)인데 신라(新羅) 때 적선(積善)으로 고쳐서 야성군(野城郡 : 현 영덕군)에 속했다가, 고려(高麗) 초에 부이현(鳧伊縣)이 되고 운봉(雲鳳)으로 고쳐서 예주(禮奏 : 영해)에 속했다.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진보현(眞寶縣)에 합하였고 1419년(세조 원년)에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 후에 진보와 분리되고 송생현(松生縣)과 합하여 청송(靑松)으로 개칭하였으며 부(府)로 승격하고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人物)로 영민(英旼)의 아들 순(巡)이 시랑(侍郞)을 지냈으며, 손자 건(蹇)은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을 역임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한편 영민(英旼)의 증손(曾孫)인 이목(以牧)은 군수(郡守)를 지냈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으며 판관(判官)을 역임한 응천(應天)과 중추부사(中樞府事) 대익(大翼), 부호군(副護軍) 운상(雲翔) 등은 훌륭한 청송 장씨(靑松張氏) 가문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송장씨(靑松張氏)는 전국에 총 102가구, 317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청송장씨조상인물 

장순(張 巡) : 자(字)는 술조(述租). 고려 때 시랑(侍郞)을 역임하였다.

장건(張 蹇) : 조선(朝鮮) 때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을 지냈다.

장이목(張以牧) :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환(張 桓) : 조선(朝鮮)에서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장한량(張漢良) : 조선(朝鮮)에서 한림(翰林)을 지냈다.

장사언(張思彦) :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장필상(張弼祥) :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를 지냈다.

장정(張 楨) :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장극관(張克寬) : 조선(朝鮮) 때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장응천(張應天) : 조선에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고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장대익(張大翼) : 자(字)는 재익(載翼).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장운상(張雲翔) :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