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창녕장씨시조(昌寧張氏),장천일(張千鎰),창녕장씨조상인물,하산장씨

작성일 : 2017-05-08 16:21 수정일 : 2018-08-30 15:2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창녕장씨시조(昌寧張氏 始祖) 장천일(張千鎰)은 태사공(太師公) 정필(貞弼)의 6세손이며,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옥산군(玉山君)에 봉(封)해진 효익(孝翼)의 아들이다. 천일은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228년(고종 15) 전중(殿中) 시어사(侍御史)가 되어 사신(使臣)으로 몽고(蒙古)에 다녀와 국자감 좨주(國子監祭酒)가 되었으며, 그후 2차례나 몽고(蒙古)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왔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三別抄)가 난을 일으키자 대장군(大將軍)으로 경상도(慶尙道) 수로방호사(水路防護使)가 되어 난을 평정하였고, 이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냈으며, 충렬왕조(忠烈王朝)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보문각(寶文閣) 대학사(大學士)에 오르고 하산(下山 : 창녕의 별호)군(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이 천일(千鎰)을 시조로 삼고 본관(本貫)을 창녕(昌寧)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창녕(昌寧)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比斯伐)인데 555년(진흥왕 16) 하주(下州)라 칭하고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는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태조(太祖) 때 창녕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 : 밀양)에 귀속되었다가 인조조(仁祖朝)에 현(縣)으로 복귀,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으며 1914년 영산군(靈山郡)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창녕 장씨의 가문(家門)에서는 고려(高麗) 때 누대(累代)에 걸쳐 평장사(平章事)가 많이 배출되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병조(兵曹) 좌랑(佐郞)을 역임한 계회(季會)와 사간원(司諫院) 헌납(獻納)을 재낸 계지(繼池), 부사(府使)를 지낸 응성(應星) 등이 가문을 더욱 빛내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창녕장씨(昌寧張氏)는 전국에 4,814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창녕장씨조상인물

장정하(張廷賀) : 고려조(高麗朝)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태우(張台祐) :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하(張 夏) : 고려조(高麗朝)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제(張 躋) : 고려(高麗) 때 지제고(知制誥)를 지녔다.

장문렬(張文烈) :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호(張 昊) : 고려조(高麗朝)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계근(張繼根) : 고려조(高麗朝)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장구성(張九成) :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장기(張 紀) : 고려(高麗) 때 감사(感謝)를 역임하였다.

장세욱(張世郁) : 고려조(高麗朝)에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장안세(張安世) :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장우심(張友心) : 조선(朝鮮) 때 장령(掌令)을 지냈다.

장아(張 莪) :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장계회(張季會) : 조선조(朝鮮朝)에 병조(兵曹) 좌랑(佐郞)을 역임하였다.

장계지(張繼池) : 조선(朝鮮) 때 헌납(獻納)을 지냈다.

장응성(張應星) :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