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천장씨시조(鎭川張氏),장유(張裕),진천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16:12 수정일 : 2018-09-05 10:1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천장씨(鎭川張氏)는 장씨(張氏) 도시조(都始祖) 정필(貞弼)의 후손(後孫) 장 유(張 裕)를 시조(始祖)로 한다. 유(裕)는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좌우위중추원사(左右衛中樞院事)․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지냈고, 예산군(禮山君)에 봉해졌다가 다시 진천군(鎭川君)에 개봉(改封)되었다고「진천장씨세보(鎭川張氏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후손들은 진천(鎭川)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며 진천(鎭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천(鎭川)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금물노군(今勿奴郡) 또는 만노(萬弩)․수지(首知)․신지(新知)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흑양군(黑壤郡) 혹은 황양(黃壤)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와서 강주(降州)로 개칭되었고 뒤에 진주(鎭州)로 하였다가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하여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 진천(鎭川)으로 개명하여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진천군(鎭川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유(裕)의 손자(孫子) 빈(贇)이 1164년(고려 의종 18)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판도판서(版圖判書)를 거쳐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증손(曾孫) 진영(鎭永)은 문하시랑(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에 올라 이름을 날렸다.

그 밖의 인물(人物)로는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른 송(松)과 광정대부(匡靖大夫)․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낸 하일(河馹)이 뛰어났고, 부사(府使)를 역임한 기손(起孫), 참판(參判)을 지낸 희안(希顔)은 훌륭한 가문을 유명하게 하였으며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역임한 관일(貫一)도 유명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천장씨(鎭川張氏)는 전국에 1,0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진천장씨조상인물 

장송(張 松) : 호(號)는 송헌(松軒), 시호(諡號)는 문양(文襄). 고려(高麗)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다.

장하일(張河馹) : 호(號)는 하정(夏亭).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장사준(張思俊) : 조선(朝鮮) 때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장렴(張 廉) : 조선(朝鮮)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장중지(張仲智) :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장기손(張起孫) :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장세필(張世弼) : 자(字)는 국필(國弼). 조선조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장임(張 任) : 자(字)는 원인(元仁).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장우(張 佑) :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장전(張 佺) :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장세겸(張世謙) : 자(字)는 군보(君輔).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장희안(張希顔) :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언상(張彦愓) : 조선(朝鮮) 때 정랑(正郞)을 지냈다.

장희열(張希悅) : 자(字)는 민승(民承). 조선 때 방어사(防禦使)를 지냈다.

장구성(張九成) : 조선(朝鮮) 때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장희상(張希商) : 조선(朝鮮)에서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대생(張大生) :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이강(張以綱) :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장중한(張重漢) : 조선(朝鮮) 때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냈다.

장극생(張克生) :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미수(張眉壽) :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장성채(張成彩) :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장관식(張寬植) : 자(字)는 관수(寬洙).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관일(張貫一) : 자(字)는 중일(重一). 조선(朝鮮) 때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