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단양장씨(丹陽張氏),단양장씨시조,장순익,장갑용,장무용,단양장씨유래,단양장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8 09:00 수정일 : 2018-02-03 11:47

단양장씨시조 및 단양장씨유래(본관)

단양장씨(丹陽張氏)는 동원(同源)이면서도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 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리는 첫째 계통은 장씨(張氏)의 도시조(都始祖)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지현(之賢)의 아들 장순익(張順翼)이 고려(高麗)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단양으로 삼게 되었고, 후단양(後丹陽)으로 불리는 둘째 계통은 태사공 정필의 14세손으로 결성부원군(結城府院君)에 봉해졌던 장 사(張 楒)의 둘째 아들 장갑용(張甲用)과 셋째 장무용(張戊用)을 관조(貫祖)로 하는 계통이다.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북부, 동단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 혹은 赤城縣)이었는데 신라 때 내제군(奈堤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고려 초에 단산(丹山)으로 개칭되었다. 1018(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했다가 뒤에 충주(忠州)로 이속(移屬)되고, 고종 때 고을 사람들이 합단(哈丹)의 난을 물리친 공으로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18(충숙왕 5)에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가 되었다. 1423(조선 태종 13)에 군()이 되고, 1895(고종 32)에 충주부(忠州府)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주군현(州郡縣) 통폐합(統廢合)에 따라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각 계통별로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단양군(丹陽君) 순익(順翼)의 아들 재일(載鎰)이 고려조에서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한문(漢文)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여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한편 조선조(朝鮮朝)에서 황해도(黃海道) 감사(監司)와 호조(戶曹) 참의(參議)를 역임했던 중란(仲蘭)의 아들 윤화(允和)는 정용낭장(精勇郎將)으로 한양(漢陽) 환도(還都)에 공()을 세워 단산군(丹山君)에 봉해졌으며, 태종(太宗)과 동갑계원(同甲契員)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그의 아들 지()는 강원 감사(江原監司)를 지내고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王位)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隱居)하며 매서운 절개를 지켰다.

한말에 와서는 윤덕(胤德)이 의병(義兵)을 규합하여 영주(榮州)․풍기(豊基) 등지에서 일본군(日本軍)과 싸우던 중 부상하여 체포된 뒤에도 계속 항거하다가 총살당했다.

후단양(後丹陽) 계통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조선(朝鮮) 초기에 한성부(漢城府) ()을 역임한 덕랑(德郞)과 예조(禮曹) 판서(判書)에 올랐던 계증(繼曾)이 유명했고,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웠던 온()은 정국3등공신(靖國三等功臣)으로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져서 호조(戶曹) 참판(參判)(參判)을 지낸 강(), 공조(工曹) 참판(參判) 석규(錫奎),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 등과 함께 단양 장씨를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단양장씨(丹陽張氏)는 전국에 44,334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단양장씨조상인물

<선단양(先丹陽)>

장재일(張載鎰): 고려(高麗) 때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장한문(張漢文): ()는 사준(士俊). 1258(고종 45)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 국자감(國子監) 제주(祭酒) 겸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고 단양군(丹陽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장몽흡(張夢洽): 초명(初名)은 흡(), ()는 화수(華守).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국학(國學) 박사(博士)와 우통례(右通禮)를 역임하였다.

장중란(張仲蘭): 조선(朝鮮) 때 문과(文科)에 급제, 봉상대부(奉常大夫)로 용주(龍州) 부사(府使)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황해도(黃海道) 감사(監事)와 호조(戶曹)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윤화(張允和): 초명(初名)은 윤서(允瑞), ()는 시집(時執), ()는 연파(煙坡), 시호(諡號)는 충익(忠翼), 호조(戶曹) 참의(參議), 중란 (仲蘭)의 아들. 조선 때 비순위 정용낭장(備巡衛精勇郎將)을 역임하고 한양 환도(漢陽還都)에 공()이 있어 단산군(丹山君)에 봉해졌다. 태종(太宗)과 동갑계원(同甲契員)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장지(張 祉): ()는 수만(綏萬), () 긍암(兢庵). 조선(朝鮮) 때 강원(江原) 감사(監司)를 지내고, 단종(端宗)이 손위(遜位)되자 절의(節義)를 지키며 은거(隱居)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장덕강(張德康): ()는 치일(致一). 조선(朝鮮) 때 제주 목사(濟州牧使)를 지냈다.

장용관(張用寬): ()는 대여(大汝). 조선조(朝鮮朝)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翰林)을 역임하였다.

장명한(張明漢):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장명량(張明良):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장세문(張世文):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근( ): ()는 이신(而信), ()는 잠재(潛齋). 퇴계(退溪) 이 황(李 滉)의 문인(門人). 조선조(朝鮮朝)에 매헌(梅軒) 금 보(琴 輔)․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물암(勿庵) 김 융(金 隆) 등과 함께 도의(道義)로 교유하며 학행(學行)으로 명성을 떨쳤다.

장진(張 溍): ()는 여징(汝澄), ()는 녹야당(鹿野堂). 조선(朝鮮) 선조(宣祖)때 성균 진사(成均進士)를 지냈다.

장규정(張奎井): ()는 문서(文瑞), ()는 학암(鶴岩). 조선조(朝鮮朝)에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를 지냈다.

장석인(張錫寅): ()는 형중(亨中), ()는 만락헌(晩樂軒). 조선(朝鮮) 때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장위규(張緯奎):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장윤덕(張胤德): 1872(고종 9)1907(융희 1). ()는 원숙(元淑). 예천(醴泉) 출신. 예천군(醴泉郡) 서기(書記)로 재직(在職) 중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동지들과 협의, 일본 요인의 암살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걸인을 가장하여 각처로 피신했다. 1907(융희 1)에 고향에 돌아와 동지 50여 명을 규합, 예천 우체국을 습격하여 이를 파괴하여 일본인 우체국장(郵遞局長)을 살해했다. 이어 1백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의병장이 되어 영주(榮州)․풍기(豊基) 지방의 일본군 1개 중대를 문경(聞慶)에 유도하여 이를 섬멸했다. 상주(尙州)․대구(大邱)의 일본 수비대와 싸우던 중 부상하여 체포된 뒤에도 계속 항거하다가 총살(銃殺)당했다.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建國功勞勳章)이 수여되었다.

<후단양(後丹陽)>

장효원(張孝元): ()는 응로(應老). 고려(高麗)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다.

장춘(張 春): ()는 현경(顯卿). 고려(高麗)에서 영동정(領同正)을 역임하였다.

장하(張 夏): ()는 세경(世卿), ()는 청령(淸令), 시호(諡號)는 충현(忠顯). 고려조(高麗朝)에 영동정(領同正)을 역임하였다.

장구(張 耈): ()는 춘여(春汝). 고려(高麗)때 사헌부사(司憲府事)를 역임하였다.

장로(張 老): ()는 현로(顯老). 고려조(高麗朝)에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다.

장이검(張以儉): 고려(高麗) 때 병부(兵部)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장덕랑(張德郞): ()는 민(), ()는 임정(林亭). 조선조(朝鮮朝)에 한성부(漢城府) ()을 역임하였다.

장아(張 莪): 조선(朝鮮) 때 이조(吏曹)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장계증(張繼曾): 조선 때 예조(禮曹)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장적( ): ()는 대훈(大訓). 조선(朝鮮) 때 호조(戶曹)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형운(張亨運): ()는 경우(慶遇). 조선에서 주서(注書)를 지냈다.

장자충(張子忠): ()는 이효(而孝). 조선조에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장우량(張友良): 조선(朝鮮)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장윤현(張胤賢): ()는 여량(汝亮). 조선(朝鮮) 때 호조(戶曹) 좌랑(佐郞)을 지냈다.

장충범(張忠範): ()는 효즉(孝則). 조선에서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장봉남(張奉男): ()는 공사(孔嗣). 조선(朝鮮) 때 병조(兵曹)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옥(張 鈺): ()는 경옥(敬鈺). 조선에서 감사(監司)를 지냈다.

장윤(張 潤): ()는 택중(澤中). 조선(朝鮮)에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장인(張 認): ()는 겸중(謙仲), ()는 은곡(隱谷). 조선(朝鮮) 때 유수(留守)를 역임하였다.

장충한(張忠漢): ()는 도명(道明). 조선조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장철현(張鐵鉉): ()는 맹상(孟常). 조선 때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장덕의(張德義): 조선(朝鮮) 때 이조(吏曹)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자인(張自仁): 조선 때 이조(吏曹) 참판(參判)를 역임하였다.

장귀손(張貴孫): 조선(朝鮮)에서 부윤(府尹)을 지냈다.

장자허(張自虛): ()는 은석(銀碩). 조선조에 교위(校尉)에 이르렀다.

장익(張 翼): ()는 치원(致遠).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온( ): ()는 군현(君賢), 시호(諡號)는 민양(敏襄). 1506(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策錄)되고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다.

장대립(張大立): ()는 대보(大甫).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세창(張世昌): ()는 구당(鳩堂), ()는 제중(濟仲). 조선(朝鮮)에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장강(張 綱): ()는 서헌(西軒). 조선(朝鮮) 때 호조(戶曹) 참판(參判)을 지냈다.

장유선(張維善): 조선조(朝鮮朝)에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다.

장언균(張彦均): ()는 군평(君平). 조선(朝鮮)에서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장몽상(張夢祥): ()는 추경(推卿). 조선 때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장이(張 弛): 조선(朝鮮) 때 감사(監司)를 지냈다.

장석규(張錫奎): ()는 여로(汝老). 조선 때 공조(工曹)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훈선(張勳善): ()는 선보(善甫).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장흥남(張興南): 조선 때 예조(禮曹)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준(張 準): 조선(朝鮮)에서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장보복(張輔福): ()는 인검(仁儉).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장재연(張在淵): ()는 덕여(德汝).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장용국(張容國): ()는 고산(高山). 조선조(朝鮮朝)에 종사랑(從仕郞)에 이르렀다.

장일겸(張一謙): ()는 한보(漢輔). 조선(朝鮮)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하였다.

장경철(張景哲): ()는 명보(明保). 조선조(朝鮮朝)에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장사량(張士良):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장세규(張世逵): ()는 점숙(漸叔).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