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구례봉성장씨(求禮․鳳城張氏),구례장씨시조,장악(張岳),봉성장씨

작성일 : 2017-05-07 19:36 수정일 : 2019-07-22 15:31

시 조

구례장씨시조(求禮張氏 始祖) 장악(張 岳)은 도시조(都始祖) 정필(貞弼 : 일명 길, 안동 장씨의 시조)의 21세손이다.「봉성장씨족보(鳳城張氏族譜)」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고려(高麗) 인종(仁宗 : 제 17대 왕, 재위기간 1123~1146년)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나이 70에 입조(入朝)할 때마다 얼굴에 수심(愁心)이 가득하였다. 하루는 그 까닭을 하문(下問)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신(臣)이 출생하여 자란 곳이 봉성(鳳城)인지라 고향이 생각나서 그러합니다”라고 하자 왕이 즉석에서 봉성(鳳城)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고 봉성군(鳳城君)에 봉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구례(求禮)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구례(求禮 : 봉성의 별칭)는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구지차현(仇知次縣) 또는 구례차현(仇禮次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에 구례현(求禮縣)으로 고치고 곡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는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고, 1143년(인종 21)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1499년(연산군 5)에 현(縣)을 폐하고, 부곡(部曲)을 만들어 남원부에 속하게 하였다가 1507년(중종 2)에 다시 현(縣)으로 부활시켰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시켜 남원부(南原府) 관할 하에 두었다가, 1906년(광무 10)에 전라남도에 속하게 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면(求禮面)이 읍(邑)으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군수(郡守) 사종(嗣宗)의 아들 필무(弼武)가 중종(中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절제사(僉節制使)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명종(明宗)과 선조(宣祖) 때 가장 청렴 결백한 무신(武臣)으로 알려져 죽은 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병조(兵曹) 판서(判書)에 추증되었다.

그의 두 아들 의현(儀賢)과 지현(智賢) 형제도 유명했는데 의현(儀賢)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해남 현감(海南縣監)을 거쳐 선조(宣祖) 때 부령(富寧) 부사(府使)로 니탕개(尼湯介)의 침입을 막아 명성을 떨쳤고, 지현(智縣)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신립(申砬)의 부장(副將)을 지낸 후 임진왜란 때 부하를 거느리고 황간(黃澗)의 추풍령(秋風嶺)에서 적과 대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낸 준(浚)과 부총관(副摠管) 정(檉)이 유명했고, 부호군(副護軍) 수회(壽會)․석좌(錫佐)․후창(後昌)․국만(國萬) 등과 중추부사(中樞府使) 세후(世後)․진구(軫九) 등(等)이 가문을 빛냈었다.


인 구

2015년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구례장씨(求禮張氏)는 15,571명 봉성장씨(鳳城張氏)는 1,67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장교(張 橋) : 고려(高麗) 때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하였다.

장순지(張順智) : 고려 때 소경(少卿)을 역임하였다.

장순의(張順義) : 고려조(高麗朝)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장주오(張周吾) : 고려 때 시랑(侍郞)을 지냈다.

장주길(張周吉) : 고려시대에 시랑(侍郞)을 역임하였다.

장유(張 維) : 고려 때 시랑(侍郞)을 지냈다.

장충신(張忠信) : 조선 때 소경(少卿)을 역임하였다.

장충익(張忠翊) : 조선조(朝鮮朝)에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장세정(張世禎) :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장필무(張弼武) : 1510(중종 5)~1574(선조 7). 자(字)는 무부(武夫), 호(號)는 백야(栢冶), 시호(諡號)는 양정(襄貞), 군수 사종(嗣宗)의 손자. 1543년(중종 38) 무과(武科)에 급제, 부산진(釜山鎭) 첨절제사(僉節制使)․만포진 (滿浦鎭) 첨졀제사(僉節制使) 등을 지낸 후, 종사관(從事官)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왔고, 온성(穩城) 판관(判官)으로 나가 변방의 경비를 엄중히 했다. 1572년(선조 5) 함경도(咸鏡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호인(胡人)을 격퇴하고, 이듬해 경상좌도(慶尙左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되었다. 역학(易學)에도 밝았다. 명종(明宗)과 선조 때의 가장 청렴 결백한 무인으로 알려져 죽은 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병조(兵曹) 판서(判書)에 추증(追贈 ), 영동(永同)의 화암서원(花巖書院), 무주(茂朱)의 죽계서원(竹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장의현(張儀賢) : 일명 응현(應賢), 자(字)는 의권(宜權), 호(號)는 오류정(五柳亭),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필무(弼武)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 해남(海南) 현감(縣監)을 지내고, 1583년(선조 16) 부령(富寧) 부사(府使)로서 니탕개(尼湯介)의 침입을 막아 명성을 떨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장흥(長興) 부사(府使)로서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활약, 경기도(京畿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이르렀다.

장지현(張智賢) : 1536(중종 31)~1593(선조 26). 자(字)는 명숙(明叔), 호(號)는 삼괴당(三槐堂),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필무(弼武)의 아들. 1590(선조 23) 천거를 받아 전라도(全羅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신입(申砬)의 부장(副將)이 되고, 이듬해 감찰(監察)에 올랐으나 사직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경상도(慶尙道) 관찰사(觀察使) 윤선각(尹先覺)에게 용맹을 인정받아 그의 비장(裨將)이 되어 이듬해 부하 수천 명을 거느리고 황간(黃澗)의 추풍령(秋風嶺)에서 적을 요격(邀擊) 하던 중 금산(錦山) 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장(倭將) 구로다(黑田長政) 군사의 협공을 받아 전사(戰死)했다. 병조(兵曹) 참의(參議)에 추증(追贈),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장응락(張應洛) : 자(字)는 백원(伯源). 조선 때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장방한(張邦翰) : 자(字)는 공보(公甫). 조선 때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장세안(張世安) : 자(字)는 휘경(輝卿). 조선 때 총관(摠管)을 지냈다.

장천순(張天淳) : 자(字)는 덕수(德修). 조선(朝鮮)에서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장석기(張錫基) : 자(字)는 대규(大奎). 조선조(朝鮮朝)에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장성신(張誠信) :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희재(張熙載) : 자(字)는 여익(汝翼), 호(號)는 오봉(五峰). 조선 때 기사관(記事官)을 역임하였다.

장령(張 欞) : 자(字)는 군길(君吉), 호(號)는 송암(松巖).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규(張 圭) : 자(字)는 서옥(瑞玉), 호(號)는 소암(小菴).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장기정(張基正) : 자(字)는 성국(成局). 조선 때 참찬관(參贊官)을 지냈다.

장두욱(張斗煜) : 자(字)는 자추(子樞).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장처원(張處元) : 자(字)는 여일(汝一). 조선 때 사정(寺正)을 역임하였다.

장빈(張 彬) : 자(字)는 문중(文中), 호(號)는 석산(石山).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장준(張 浚) : 자(字)는 경보(敬甫). 조선(朝鮮) 때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냈다.

장의익(張儀翼) : 조선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장정(張 檉) : 자(字)는 화여(華汝). 조선(朝鮮) 때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장경수(張景壽) : 자(字)는 자인(自仁), 호(號)는 사헌(沙軒).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장기주(張璣周) : 자(字)는 옥서(玉瑞), 호(號)는 취은(醉隱). 조선조(朝鮮朝)에 참찬관(參贊官)을 역임하였다.

장기홍(張基弘) : 호(號)는 석암(石庵). 조선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장세방(張世邦) : 자(字)는 도원(道元), 호(號)는 사졸재(四拙齋),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장계손(張繼孫) : 조선(朝鮮) 때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장익손(張益孫) : 조선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장한공(張漢公) : 조선(朝鮮)에서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장수회(張壽會) : 자(字)는 경수(慶叟).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석운(張錫雲) : 자(字)는 경서(慶瑞).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장석좌(張錫佐) : 자(字)는 좌인(佐仁). 조선(朝鮮)시대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기호(張箕浩) : 자(字)는 한명(翰明). 조선조(朝鮮朝)에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장일룡(張一龍) : 자(字)는 경구(敬九). 조선 때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장후창(張後昌) :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국만(張國萬) :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장양옥(張良玉) : 자(字)는 문오(文五). 조선조(朝鮮朝)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장도준(張道俊) : 자(字) 명선(明善), 호(號)는 유촌(柳村). 조선(朝鮮)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장이성(張以成) : 자(字)는 윤명(允明). 조선 때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장세복(張世復) :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장천심(張天心) : 자(字)는 피백(彼白). 조선(朝鮮)에서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장도희(張道禧) : 자(字)는 화인(化寅). 조선조(朝鮮朝)에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장석문(張錫文) : 자(字)는 순서(順瑞).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장재문(張在文) : 자(字)는 경여(敬汝).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장순복(張順復) : 자(字)는 재겸(再兼).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장진구(張軫九) : 자(字)는 진여(軫汝).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장석영(張錫榮) : 자(字)는 앙지(仰之).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