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천임씨시조(鎭川林氏),임희(林曦),진천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7 16:59 수정일 : 2018-08-28 12:2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천임씨(鎭川林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혜종(惠宗)의 비(妃)인 의화왕후(義化王后)의 아버지로서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평장사(平章事)에 이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라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진 임희(林 曦)이다

그 후 고종(高宗) 때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한 임 연(林 衍)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진천(鎭川)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천(鎭川)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금물노군(今勿奴郡) 또는 만노(萬弩)․수지(首知)․신지(新知)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흑양군(黑壤郡) 홀은 황양(黃壤)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와서 강주(降州)로 개칭되었고 뒤에 진주(鎭州)로 하였다가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하여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천(鎭川)으로 개명하여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에는 진천군(鎭川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 임연(林衍)의 손자 간(侃)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과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으며, 증손 희정(希正)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우찬성(右贊成)에 올랐고, 현손 지(智)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추충보절동덕찬화보리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輔理功臣)에 녹훈되고 후에 상산군(常山君)에 봉해져서 가문을 빛냈다.

이 외에도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호조 참의(戶曹參議)을 지낸 구(球),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역임한 수성(秀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낸 각(珏) 등이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천임씨(鎭川林氏)는 남한(南韓)에 2,6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진천임씨조상인물

임간(林 侃) 고려조(高麗朝)에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 겸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다.

임희정(林希正)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로 우찬성(右贊成)을 역임하였다.

임지(林 智) 고려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추충보절동덕찬화보리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輔理功臣)에 녹훈되고, 문화시중(門下侍中)․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대제학(大提學)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한 후 상산군(常山郡)에 봉해졌다.

임구(林 球)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임득제(林得濟)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광주 목사(光州牧使)를 지냈다.

임수경(林秀卿) 호(號)는 취정(醉亭). 조선(朝鮮) 때 삭녕 군순(朔寧郡守)․홍주 목사(洪州牧使)를 지내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임수성(林秀成)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형조 참판(刑措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使)․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總管)을 역임하였다.

임수옥(林秀玉) 조선조(朝鮮朝)에 감역(監役)을 지냈다.

임구(林 鉤) 조선에서 제용감 주부(濟用監主簿)를 역임하였다.

임전(林 銓) 조선조에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를 역임하였다.

임경문(林敬文)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임경충(林敬忠) 조선에서 직장(直長)을 지냈다.

임언충(林彦忠) 조선(朝鮮) 때 사섬시 직장(司贍寺直長)을 역임하였다.

임격(林 格) 자(字)는 자정(子正). 조선조(朝鮮朝)에 사복시 첨정(司僕寺僉正)을 역임하였다.

임윤종(林胤宗) 자(字)는 광전(光前). 조선조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하여 진잠 현감(鎭岑縣監)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에 추증되었다.

임호의(林好義) 자(字)는 의중(宜中). 조선조(朝鮮朝)에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에 올랐다.

임춘(林 春) 자(字)는 춘지(春之). 조선 때 내섬시 봉사(內贍寺奉仕)를 거쳐 창신교위(彰信校尉)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임세응(林世應)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충무위 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지냈다.

임세복(林世福) 자(字)는 향지(饗之).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임각(林 珏) 자(字)는 형중(刑中). 조선조(朝鮮朝)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역임하였다.

임협(林 浹) 자(字)는 여화(汝化).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임흥진(林興震)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다.

임유도(林有道) 자(字)는 일지(一之). 조선(朝鮮)에서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임수형(林秀蘅) 자(字)는 방중(芳中).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하여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임처봉(林處鳳) 자(字)는 성의(聖儀).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다.

임처군(林處崑) 자(字)는 수옥(秀玉). 조선조(朝鮮朝)에 동지중추부사 (同知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임처일(林處逸) 자(字)는 덕보(德甫).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