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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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05-07 16:38 수정일 : 2018-08-17 14:53

평택임씨 시조 및 연원

평택임씨(平澤林氏)는 우리나라 모든 임씨(林氏)의 도시조(都始祖)이신 팔급공(八及公-임팔급)이 서기 870년경 중국 복건성 동령, 팽성(東鈴, 彭城)에서 7학사와 함께 당나라 말기의 혼란을 피해 지금의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농성(農城)에 정착하면서 시작한다. 八及公은 당나라에서는 한림학사이시고 신라국에서는 이부상서(吏部尙書)의 높은 벼슬과 변방의 적 침입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워 시호는 충절공이며 서기 1100년경 1차 분관 전에는 팽성 임씨(彭城 林氏)로 사용하였다.

과거 족보 발간은 교통, 통신이 열악하여 생활 세거지 위주로 편집 해 오류가 많아 1997년 전국임씨 중앙회를 구성, 삼대 사업의 하나인 임씨 상계를 첫번째 사업으로 八及公의 中國上系, 八及公에서 7세손 몽주(夢周)까지의 계대, 몽주(夢周)에서 세춘(世春)과 언수(彦脩)까지 계대(系代)를 정립(定立)하였다.

그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임씨는 평택관에서 분관하였으며 현제 평택관은 두 대 계보로 구성, 충주를 중심으로 한 세자(世子) 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충정공파(忠貞公派)로 구성되었다. 전객령공파는 고려 말에 세자 전객령 겸 연희궁 부사(延禧宮 副使)를 지낸 林世春을 一世祖로 하여, 누대에 걸쳐 세거하며 세춘의 아들 재(梓)가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보문각 대재학을 지냈고 증손 정(整)이 조선 태종(太宗) 때 예조판서에 올라 성종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으며 현손(玄孫) 명산(命山)이 이조판서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조선의 명장 충민공 경업(慶業)은 世春의 12세손이며 현손인 갈곡(葛谷) 수겸(守謙)으로 이어진 계통이 있다. 특히 충민공의 8형제 분께서 모두 8개파로 나누어졌다.

또한 계통은 고려 말에 삼중대광(三重大匡)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언수(彦脩) 충정공(忠貞公)을 1세로 하고 그 장남 성미(成味) 충간공(忠簡公), 차남 견미(堅味)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 삼남 제미(齊味) 판윤공(判尹公), 사남 世味) 조양군(兆陽君)은 조양관으로 분관하였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택임씨는 전국에 총 225,87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임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

임세춘(林世春) 고려말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부사(衍喜宮府事)로 충주를 중심한 세자객령공파(世子客令公派)의 중시조

임인수(林彦脩) : 호는 주현(柱憲),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고려말에 훈공으로 입상출장(入相出將)한 명신(名臣). 시호는 충정(忠貞)· 충정공계(忠貞公系)의 중시조

임재(林 梓) : 고려말에 예의판서. 보문각 대제학(普文閣大提學)을 지냈다.

임성미(林成味) : ?~1388년. 고려 무신. 1378년 밀직부사로서 서경도순문사(西京都巡問使)가 되어 연산(連山), 이산(尼山), 공주(公州)에서 왜구를 격파 삼사우사(三司右使)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간(忠簡)

임견미(林堅味) : ?~1388년, 무신 언수의 둘째아들.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 1361년 홍건적(紅市賊)의 난 때 정벌과 왕을 호종하여 1등공신이 되고, 1377년 왜구의 침입 때 동강부원수(東江副元帥)로 공을 세워 1383년 개방제조(改房提調)를 겸임, 이듬해 문하시중 (門下侍中)이 되었다.

임제미(林齊味) : 언수의 셋째아들. 평성부원군(平城府院 君). 문과에 급제 개성판윤(開城判尹)을 지냈으며 관산군(冠山君)의 봉작을 받았다.

임치 : 임견미의 아들. 우왕의 총애를 받아 여러 관직을 거쳐 멸직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무진사화로 임견미, 임제미, 임치 등이 1388년 한남에 이성계에 피해를 받았다.

조선시대 인물

임보(林 蘇) 조선시대 통훈대부(通訓大夫), 첨정(僉正),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임정(林 整) : ? -1413년. 정현대부(正憲大夫)로 예조판서(禮曹判書)를 거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평양부윤(平壤府尹)을 지내고, 성종조(成宗朝)에 청백리 (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임수겸(林守謙) : 호는 갈곡(葛谷). 윤생(允生)의 아들. 1447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1455년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466년 전라도관찰사가 되고 호 조와 예조의 참의(參議). 대사성(大司成). 부제학(副 提學) 등을 역임했다.

임경업(林度業) : 1594년-1646년. 호는 충민(忠愍). 1624년 이괄(李造)의 난을 정벌, 일등공신이 되고 1627년 낙안군수. 1631년 정주목사(定州牧使),, 1638년 안주목사(安州牧使), 1646년 김자점 명을 받은 형리(刑吏)에 의해 장살(杖殺)되었다. 1697년 복관(復官)되고, 충주 충민사(忠愍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임향업(林享業) : 경업의 형. 1636년 병자호란에 출전. 숙종때 지평(持平)에 추증, 정조(正祖)때 효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임향수(林享秀) : 1504년-1547년. 호는 금호(錦湖), 진사(進士) 주서(注書) 기사관(記事官). 사서(司書), 회령판관(會寧判官). 전한(典翰) 등을 거쳐 부제학(副提 學)에 승진.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제주목사로 옮긴 후 소윤 대윤으로 몰려 사사(賜死)되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1702년에 나주 송재서원에 제향되었다.

임회(林 檜) : 1562년-1624년. 호는 관해(觀海). 현 감 길수(吉秀)의 아들. 1623년 인조반정 (仁祖反正)으로 예조정랑에 등용.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었다가 이괄(李活)의 난으로 타계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좌승지에 추증(追贈). 1606년 나주 정렬사에 제향(祭享) 되었다.

임경번(林景藩) : ? ~ 1588년. 선조 21년(1588) 두만강 녹둔도 전투에서 오형(吳亨). 이순신(李舜臣)과 혁혁한 공을 세워 충성과 의거가 늠름하여 조정에서 휼전을 시행하였다. (宣祖實錄)

임병찬(林策瓚) : 1851년-1916년. 호는 돈헌(敦軒). 옥구(沃溝) 출신. 1889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낙안군수(樂安郡守). 1905년 대마도에 유배 후 1910년 왕의 특명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전남 순무대장(全南巡撫大將)이 되어 항일운동 전개. 1914년 거문도(巨文島)에 유배. 1916년에 단식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