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익산임씨 시조(益山林氏), 임완(林完), 익산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7 15:41 수정일 : 2018-07-30 15:3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익산임씨(益山林氏)는 당(唐) 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신라(新羅)에 들어와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한 후 평택(平澤) 용포리(龍浦里)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한 임팔급(林八及)의 후손 임완(林 完)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송(宋)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하고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을 지냈으며, 인종(仁宗) 때 수창궁(壽昌宮) 옆에 서적소(書籍所)를 설치하자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고문이 되었으며, 이어 국자사업(國子司業)․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그후 후손들이 익산(益山)에 살면서 평택에서 분적(分籍)하여 익산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익산(益山)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북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신라(新羅) 시대에 금마군(金馬郡)이라 하였고, 고려(高麗) 초에는 전주(全州)에 속하였다가 충혜왕 때 익주(益州)로 승격하였으며, 1413년(태종 13) 익산군(益山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을 보면 근세(近世)가 조선에서 한림원 제학(翰林院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을재(乙材)가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지철(之哲)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익산임씨(益山林氏)는 남한(南韓)에 1,34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익산임씨조상인물

임근세(林近世) 시호(諡號)는 문효공(文孝公). 조선(朝鮮) 때 한림원 제학(翰林院提學)을 역임하였다.

임을재(林乙材) 조선에서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임훈(林 薰) 조선 때 진사(進士)를 지냈고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임지철(林之哲)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