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울진임씨시조(蔚珍林氏) 고려때 호종공신으로 울릉군에 봉해진 임우(林祐)를 시조로 하고

작성일 : 2017-05-07 15:23 수정일 : 2018-08-28 12:13

울진임씨시조

울진임씨(蔚珍林氏)는 고려(高麗) 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라 중부상서(中部尙書)를 지냈고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울릉군(蔚陵君)에 봉해진 임우(林祐)를 시조(始祖)로 하고 평택 임씨(平澤林氏)에서 분적(分籍), 본관(本貫)을 울진(蔚珍)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울진(蔚珍)은 강원도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는 우진야현(于珍也縣 : 일명 古于伊)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울진(蔚珍 : 일명)으로 개칭하여 군(郡)으로 고쳤다.


대표적인 인물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朝鮮)에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지낸 욱경(旭卿), 기골이 장대하고 무용(武勇)에 뛰어난 역사(力士)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많은 전공을 올린 중량(仲樑), 그리고 전적(典籍)․예조 좌랑(禮曹佐郞)등을 지냈으며 「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등에 정통한 익빈(益彬) 등이 유명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울진임씨(蔚珍林氏)는 남한(南韓)에 23,7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울진임씨조상인물

임이직(林以直) 고려(高麗) 때 삼사 태상경(三司太常卿)을 역임하였다.

임상직(林尙直) 고려 고종조(高宗朝)에 봉상대부(封常大夫)로 전의시 부령(典儀寺副令)을 역임하였다.

임득배(林得培) 고려 원종(元宗) 때 산원 동정(算員同政)을 지냈다.

임득재(林得載) 고려 원종(元宗)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임여정(林呂楨)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봉익대부(奉翼大夫)로 판사(判事)를 지냈다.

임여자(林呂資) 고려 충숙왕주(忠肅王朝)에 예부 상서(禮部尙書) 겸 사관 수찬(史官修撰)을 역임하였다.

임응준(林應俊) 고려(高麗) 공민완(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

임상준(林尙俊) 고려조에 호부 낭중(戶部郎中)을 지냈다.

임영준(林英俊)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산기시랑(散騎侍郞)을 거쳐 호부 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다.

임중호(林重浩) 조선 세종(世宗)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임욱경(林旭卿) 조선조에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임희경(林喜卿) 자(字)는 빈욱(賓旭). 조선 성종(成宗) 때 전의사(典醫司)를 지냈다.

임조환(林朝煥) 조선 때 전라 도사(全羅都事)를 역임하였다.

임세환(林世煥) 자(字)는 문영(文永). 조선 중종조(中宗朝)에 생원(生員)이 되고, 첨정(僉正)을 지냈다.

임중하(林仲夏) 조선조에 사재감 주부(司宰監注簿)를 역임하였다.

임중완(林仲完) 조선(朝鮮)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임욱(林 彧) 자(字)는 사순(士荀), 호(號)는 학동(學童). 조선(朝鮮) 세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제천 군수(提川郡守)를 역임하였다.

임유경(林有景) 자(字)는 화중(華仲). 조선(朝鮮) 때 전력부위(展力副尉)에 이르렀다.

임필준(林弼峻) 조선조에서 선무랑(宣務郞)으로 예빈시 주부(禮賓寺注簿)를 지냈다.

임유산(林有山) 조선(朝鮮)에서 어모장군(御侮將軍)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임훤(林 萱) 자(字)는 효영(孝英). 조선 때 삼척포 첨사(三陟浦僉使)를 역임하였다.

임무(林 茂)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임의(林 猗) 조선에서 전력부위(展力副尉)에 올랐다.

임효손(林孝孫) 자(字)는 행원(行願). 조선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임달(林 達) 자(字)는 사통(士通). 조선 때 이인도 찰방(利仁道察訪)을 지냈다.

임순필(林舜弼) 조선에서 장사랑(將士郞)에 이르렀다.

임자등(林自鄧) 조선 중종(中宗) 때 봉훈랑(奉訓郞)에 올랐다.

임기등(林起鄧) 호(號)는 석호(石湖). 조선 중종(中宗) 때 장사랑(將士郞)으로 평창 훈도(平昌訓導)를 지냈다.

임운수(林芸秀) 자(字)는 국로(國老), 호(號)는 연호(蓮湖). 조선조(朝鮮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임치원(林致遠)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임수금(林秀嶔) 조선 때 장사랑(將士郞)에 올랐다.

임회(林 薈)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임영동(林英東)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임사현(林師賢) 자(字)는 군성(君聖), 호(號)는 운곡(雲谷). 조선(朝鮮)때 가선대부(加膳大夫)․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임이동(林履東)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임이명(林履命) 자(字)는 공숙(工叔), 호(號)는 죽포(竹圃). 조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충무위 사과(忠茂衛司果)를 역임하였다.

임상태(林尙泰) 자(字)는 상춘(尙春). 조선 영조(英祖)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임익빈(林益彬) 1680(숙종 6)~1744(영조 20) 자(字)는 유문(有門), 호(號)는 농헌(濃軒), 주민(柱旻)의 아들. 김익지(金翊祉)의 문인. 중화(中和)출신. 1705년(숙종 3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17년 평안도 별시문과(平安道別試文科)에 장원, 전적(典籍)․예조 좌랑(禮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감찰(監察), 1727년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낸 뒤 1741년(영조 17) 북청 부사(北靑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무고를 받아 파직되었다.「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 등에 정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