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예천임씨(醴泉林氏),예천임씨시조,임춘(林椿),예천임씨유래,예천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7 13:33 수정일 : 2018-08-28 11:53

예천임씨시조 및 예천임씨유래(본관)

예천임씨(醴泉林氏)의 시조(始祖) 임춘(林椿)은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임계미(林季美)의 후손으로 고려 의종(毅宗) 때 진사(進士)를 지내다가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자 예천읍(醴泉邑) 천서리(川西里)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정착세거(定着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관향(貫鄕)예천(醴泉)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고려(高麗)와 조선조(朝鮮朝)에 걸쳐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시켰다.


예천(醴泉)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수주현(水酒縣)을 신라 때 예천군(醴泉郡)으로 고치고 935(태조 18)에 보주(甫州)로 개칭하였다. 1018(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에 편입되었다가 1172(명종 2)에 태자의 태()를 이 고을에 묻었다고 하여 기양현(基陽縣)으로 승격외었고, 1204(신종 7)에 남도초토사(南道招討使) 최광의(崔光義)가 이 고을에서 동경적(東京賊)을 크게 토벌하였으므로 지보주사(知甫州事)로 승격되었다.

1413(태종 13)에 보천(甫川)으로 고쳤다가 1416(태종 16)에 다시 예천으로 바꾸었다. 1914년 부군면(府郡面) 폐합에 따라 용궁군(龍宮郡)을 병합하였고, 1937년 예천면(醴泉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예천이씨 가문을 빛낸 인물을 보면 천봉(天鳳)이 고려(高麗)에서 진사(進士)․판윤(判尹) 등을 역임했으며, 순련(舜連)이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올라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는 자번(自蕃)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올랐으며 문근(文根)이 이조 참판(李曹參判)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예천임씨(醴泉林氏)는 남한(南韓)66,4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예천임씨조상인물

임익(林 益) 초명(初名)은 연(), 진사(進士) 충세(忠世)의 아들. 고려조(高麗朝)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여러 관직을 거쳐 6도 순무어사(六道巡撫御史)에 올라 각 지방을 다니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공훈(功勳)을 받고, 예천군(醴泉郡)에 봉()하여졌다.

임천봉(林天鳳) 고려(高麗) 때 진사(進士)가 되고, 중직대부(中直大夫)에 올라 사선부정(司膳副正)․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임천우(林天佑)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국자감 대사성(國子監大司成)에 이르렀다.

임원길(林元吉)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를 역임했다.

임연(林 淵) 고려조(高麗朝)에 비안 현감(比安縣監)을 역임하였다.

임순련(林舜連)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올라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임윤덕(林允德) ()는 두문재(杜門齋).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정순대부(正順大夫)에 올라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를 지냈으며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정헌대부(正憲大夫)․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임중연(林仲沇) 1320(충숙왕 7) 정방(政房)이 다시 설치되자 우상시(右常侍)가 되어 전주(銓注)에 참여하고, 이듬해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으며, 22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황후(皇后)의 책봉(冊封)을 축하하는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가려 했으나 파사부(婆娑府)에 이르렀을 때 다루가치(達魯花赤)가 역마(驛馬)를 주지 않으므로 가지 못했다. 1324년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으로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어 순창군(淳昌君)에 봉해졌으며, 1328년 장백상(蔣伯祥)과 함께 정동행성(征東行省)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임계중(林繼仲)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 함안 군사(咸安郡事)를 역임하고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추증(追贈) 되었다.

임계헌(林繼獻) 조선(朝鮮) 태종조(太宗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훈련원 참군(訓鍊院參軍)을 지냈다.

임응벽(林應壁)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大司成)을 지냈다.

임하손(林賀孫) 고려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북부령(北部令)을 지냈다.

임영(林 瀯) 조선조(朝鮮朝)에 해전고 주부(解典庫主簿)를 지냈다.

임수(林 秀) 조선 태종(太宗) 때 칠원 현감(漆原縣監)에 이어 김해진관 병마절 제도위(金海鎭管兵馬節制度尉)를 역임하였다.

임자번(林自蕃) 조선 세조(世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경상(慶尙)․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내고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에 책록되어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올라 양양군(襄陽君)에 봉해졌다.

임자무(林自茂)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용양위 부사직(龍驤衛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임승조(林承祖)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鍊院參軍)을 역임하였다.

임효종(林孝宗) 조선 세종(世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임국정(林國楨) 조선(朝鮮) 때 충순위(忠順衛)의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임국양(林國樣) 조선조(朝鮮朝)에 충순위(忠順衛)의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올랐다.

임국철(林國哲) ()는 호계(護溪), ()는 금안(錦岸). 조선(朝鮮) 단종(端宗) 때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를 역임하였다.

임화영(林華瑩) 초명(初名)은 응정(應禎).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임도지(林到之) 조선(朝鮮) 때 남부 교수(南部敎授)를 지냈다.

임덕수(林德秀) ()는 수옹(秀翁). 조선조에 문과(文科)에 급제, 혜산 첨사(惠山僉使)를 역임하였다.

임모동(林慕東) ()는 유지(有志). 조선(朝鮮) 때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역임하였다.

임경련(林敬連) ()는 희정(熙正). 조선(朝鮮)에서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임욱(林 郁) 조선(朝鮮)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임운기(林雲起) ()는 여성(汝成).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용양위 부사과(龍陽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임덕상(林德祥) ()는 성서(聖瑞). 조선(朝鮮) 때 문과(武科)에 급제, 주부(主簿)를 거쳐 선전관(宣傳官)에 이르렀다.

임덕온(林德溫) ()는 양백(良伯). 조선(朝鮮) 때 충좌위 부사과(忠佐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임무장(林茂長) ()는 흥서(興瑞).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였다.

임기정(林起亭) 조선(朝鮮) 때 장례원 판결사(掌禮院判決事)를 지냈다.

임계정(林繼貞) 조선 인종(仁宗) 때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지냈다.

임문근(林文根) ()는 운식(云植), ()는 학암(鶴菴). 조선 선조(宣祖)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임긍(林 兢) ()는 사원(士元).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지냈다.

임정남(林挺楠) ()는 대로(大老).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제용감 봉사(濟用監奉事)를 지냈다.

임정기(林挺淇) ()는 자금(子琴). 조선 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거쳐 절충 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임노축(林老軸)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임정화(林廷和) ()는 의보(義甫). 조선(朝鮮)에서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