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흥양이씨시조(興陽李氏)는 국자생원 이언림(李彦林)이다

작성일 : 2017-05-06 15:24 수정일 : 2018-07-20 15:21

흥양이씨시조

흥양이씨시조(興陽李氏 始祖)는 국자생원(國子生員) 이언림(李彦林)이다. 그는 고려 의종(毅宗) 때 병부 상서(兵部尙書)와 공부 상서(工部尙書)를 거쳐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를 지낸 후, 흥양(興陽)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흥양(興陽)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흥양(興陽)은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지방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名)으로, 고려 초에는 고이부곡(高伊部曲)이라 하였으며, 1285년(충렬왕 11)에 고흥현(高興縣)이라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395년(태조 4)에 보성군 조양현(兆陽縣)으로 개편되었다가, 1397년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兵馬使)로 현감(縣監)을 겸임하게 하였다.

1441년(세종 23)에는 장흥부(長興府) 두원현(豆原縣)으로 바꾸고, 보성군 남양현(南陽縣)을 분할 편입하여 흥양(興陽)이라 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고쳐 군수(郡守)를 두었으며, 1914년 고흥군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언림(彦林)의 증손 원방(元邦)이 동정(同正)을 역임했고, 7세손 길(吉)이 문과에 올라 봉상대부(奉常大夫)를 거쳐 통례문 부사(通禮門副使)에 이르러 흥양군(興陽君)에 봉해졌다.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서원(舒原)은 언림의 8세손이며, 서원의 아들 균(均)이 문과에 올라 벼슬이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에 이르렀다.

그 외 전(㙉)이 주자학(朱子學)에 능통하여 학명(學名)을 떨쳤으며, 준(峻)은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글을 읽고, 예조 정랑(禮曹正郞)․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지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수차 의병(義兵)을 일으켜 나라에 공(功)을 세웠다.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지낸 원경(元卿)은 첨정(僉正) 대록(大祿)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흥양이씨(興陽李氏)는 남한(南韓)에 22,78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흥양이씨조상인물

이양승(李陽升)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거란(거丹)이 침입하자 김취려(金就礪)의 막하장으로 출전하여 공(功)을 세우고, 위주(渭州)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중성(李仲成) 고려에서 장령(掌令)을 지냈다.

이근(李 斤) 고려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배근(李培根) 고려(高麗)에서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이언(李 堰) 자(字)는 양경(良敬). 고려조(高麗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했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이전(李 㙉) 1558(명종 13)~1648(인조 26) 자(字)는 숙재(叔載), 호(號)는 월간(月磵), 수인(壽仁)의 아들. 부제학(副提學) 준(埈)의 형. 일찍이 주자학(朱子學)을 깊이 연구하여 학명(學名)을 떨쳤고, 1603년(선조 3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지례현감(知禮縣監)이 되었으나 다시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가 평생을 학문에 전심했다. 상주(尙州)의 옥성서원(玉城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이준(李 埈) 1560(명종 15)~1635(인조 13) 자(字)는 숙평(叔平), 호(號)는 창석(蒼石)․ 유계(酉溪),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수인(壽仁)의 아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가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적군과 싸운 공으로 형조 좌랑(刑曹佐郞)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이듬해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로 나갔다. 이때 중국 역대 왕들의 덕행과 신하들의 정사(正邪)를 밝힌 「중흥귀감(中興龜鑑)」을 편술, 왕에게 바쳤다.

그 후 지평(持平)․ 예조 정랑(禮曹正郞)․ 단양 군수(丹陽郡守)․ 수찬(修撰)․ 교리(校理)․ 집의(執義)․ 응교(應敎)․ 전한(典翰) 등을 역임하였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에 공(功)을 세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옥성서원(玉城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이원경(李元卿) 자(字)는 여선(汝先), 호(號)는 죽포(竹圃). 조선 때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지냈다.

이현준(李玄俊) 조선조(朝鮮朝)에 사인(舍人)을 역임하였다.

이운봉(李芸奉) 조선 때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