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화산이씨시조(花山李氏),이용상(李龍祥),화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6 15:23 수정일 : 2018-07-24 10:4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시조(始祖) 이용상(李龍祥)은 안남왕국(安南王國) 교지군왕(交趾郡王) 이공온(李公蘊)의 7세손이며, 안남왕(安南王) 이천조(李天祚)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화산이씨 정사세보(花山李氏丁巳世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이용상(李龍祥)은 1226년(송나라 보경 2, 고려 고종 13) 변란을 피하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 동래(東來)하여 함해도 옹진(甕津) 화산(花山)에 정착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고려(高麗) 고종(高宗)은 이를 가상(嘉尙)히 여겨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그 지역의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였다. 옹진에 정착한 용상은 북면 봉소리(北面鳳所里) 동쪽 원추형 산위에 쌓은 화산성(花山城)에 올라가 <망국단(望國壇)>을 만들고 고국을 그리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용상(龍祥)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本貫)을 화산(花山)으로 삼게 되었으며, 용상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간(幹)이 고려조에서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承)과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역임했고, 차남 일청(一淸)은 안동 부사(安東府使)를 지내고 안동 내성면 토곡리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그 곳에 많이 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용상의 6세손 맹운(孟芸)이 공민왕(恭愍王) 때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한 후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해주(海州) 원통리(圓通里)에 은거(隱居)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으며, 이태조(李太祖)가 세 차례에 걸쳐 한성판윤(漢城判尹)의 벼슬을 내리며 불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한편 효행(孝行)으로도 명망을 떨쳤던 맹운은 슬하에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장남인 덕종(德從)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재령 군수(載寧郡守)를 역임했고, 차남 대종(大從)은 송화 현감(松禾縣監)과 벽동 군수(碧潼郡守)를 지낸 후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에 이르렀다.

그외 중종(中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던 수복(壽福 : 승지 즙의 아들)이 호조 좌랑(戶曹佐郞)과 황해 도사(黃海都事)를 지내고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전횡을 과감하게 탄핵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아들 인(嶙)이 평난원종공신(平難原從功臣)에 책록되고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추증되어,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지낸 운(運),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한 회백(懷白)․창룡(昌龍) 등과 함게 화산 이씨(花山李氏)의 명맥(命脈)을 이루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화산이씨(花山李氏)는 남한(南韓)에 1,2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화산이씨조상인물

이간(李 幹) 고려(高麗) 때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이현량(李玄亮) 고려 때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냈다.

이용진(李龍進) 고려조에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을 역임하였다.

이유(李 裕) 자(字)는 덕유(德裕), 호(號)는 해은(海隱), 고려조(高麗朝)에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이일청(李一淸) 고려 때 안동 부사(安東府使)를 지냈다.

이홍(李 洪) 고려(高麗)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이맹운(李孟芸) 호(號)는 천은(川隱). 조선(朝鮮) 때 한성 부윤(漢城府尹)을 지냈다.

이덕종(李德從) 조선 때 재령 군수(載寧郡守)를 지냈다.

이대종(李大從)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주손(李周孫) 조선 때 교리(校理)를 지냈다.

이궁(李 宮) 조선조(朝鮮朝)에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즙(李 葺) 자(字)는 가견(可堅). 조선 때 승지(承旨)를 지냈다.

이수복(李壽福) 자(字)는 신지(申之), 호(號)는 지암(止庵).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이인(李 嶙) 자(字)는 사앙(士仰). 조선 때 평난원종공신(平難願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상경(李尙敬) 조선 때 소무원종공신(昭武願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응백(李應白)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였다.

이운(李 運) 자(字)는 자행(子行). 조선(朝鮮) 때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이회백(李懷白) 자(字)는 시호(詩號).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이치강(李冣綱) 자(字)는 여삼(汝三), 호(號)는 국고(菊皐). 조선조에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희지(李羲之) 자(字)는 일소(逸少).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이경행(李景行) 자(字)는 사앙(士仰).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이창룡(李昌龍) 자(字)는 용지(龍之).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창의(李昌義) 자(字)는 정숙(精叔). 조선(朝鮮) 때 효자(孝子)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언우(李言禹) 자(字)는 백삼(伯三). 호(號)는 경재(敬齋). 조선조에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규정(李奎精) 자(字)는 유일(惟一). 조선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이지영(李志永) 자(字)는 시경(詩卿). 조선 시대에 효자(孝子)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병현(李秉鉉) 자(字)는 성삼(聖三).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