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학성이씨시조(鶴城李氏),이예(李藝),학성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6 10:56 수정일 : 2018-07-23 14:05

학성이씨시조

학성이씨(鶴城李氏)는 조선(朝鮮) 때 대마도(對馬島) 정벌에 공(功)을 세워 절충장군용기위사상호군(折衝將軍龍騎衛司上護軍)에 올랐고 이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와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을 역임한 이예(李藝)를 시조(始祖)로 한다. 후손들은 시조(始祖)의 발상지(發祥地)인 학성(鶴城)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학성(鶴城)은 울산(蔚山)의 별칭으로 울산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이며, 원래 진한(辰韓)의 땅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때에 울주(蔚州)로 개칭하였으며 방어사(防禦使)를 두고 별호를 학성(鶴城)이라 하였다.

1397년(조선 태조 6)에 진(鎭)을 두었고 병마사(兵馬使)가 지주사(知州使)를 겸임하였으며 1404년(태종 3)에 울산(蔚山)이라 개칭하였다. 1931년에 면에서 읍으로 승격하였고, 1962년에 시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 예(藝)의 손자 직겸(直謙)은 군자감 판사(軍資監判事)를, 직유(直柔)는 사재감 부정(司宰監副正)을, 직강(直剛)은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여 훌륭한 가문을 빛냈다.

겸수(謙受)는 나라에 공(功)이 있어 원종훈삼등공신(原從勳三等功臣)에 책록(冊錄)되었으며 남강사(南岡祠)에 제향(祭享)되었다. 현 담(玄聃)은 문장(文章)과 학행(學行)으로 당대에 뛰어났으며, 양오(養吾)는 학자(學者)로 명성을 날리고 반계집(磻溪集)을 남겨 학성 이씨(鶴城李氏)를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성이씨(鶴城李氏)는 남한(南韓)에 16,46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학성이씨조상인물

이종실(李宗實) 조선조(朝鮮朝)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때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고 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순절(殉節)하여 조정(朝廷)에서 초혼장(招魂葬)을 치렀다.

이종근(李宗根) 조선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직강(李直剛) 조선(朝鮮) 때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였다.

이직겸(李直謙) 자(字)는 덕숙(德叔), 호(號)는 매헌(梅軒). 조선조(朝鮮朝)에 군자감 판사(軍資監判事)를 역임하였다.

이직유(李直柔) 조선 때 사재감 부정(司宰監 副正)을 역임하였다.

이세형(李世衡) 조선에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지냈다.

이섭림(李燮林) 조선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지냈다.

이겸수(李謙受) 자(字)는 자허(子虛), 호(號)는 잠와(潛窩). 1594년(선조 27)에 벼슬길에 올라 기장 현감(機長縣監)․정주 판관(定州判官) 등 을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원종훈(原從勳) 3등에 책록(策錄)되었다.

이현담(李玄聃) 자(字)는 상로(尙老), 호(號)는 국옹(菊翁), 이하구(李夏耈) 문하생으로 효행과 문장이 당세(當世)에 유명했던 학자였다.

이원담(李元聃) 자(字)는 경로(景老), 호(號)는 송옹(松翁), 조선 때 학 자(學者)였다.

이양오(李養吾) 자(字)는 용호(用浩), 호(號)는 반계(磻溪), 조선 때 학자(學者)로 반계집(磻溪集)이 남아있다.

이인중(李仁中) 호(號)는 간우(艮宇), 조선(朝鮮) 때 학자로 간우집(艮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