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태안이씨시조(泰安李氏),이욱(李煜),태안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6 10:08 수정일 : 2018-07-23 10:5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태안이씨세보(泰安李氏世譜)」에 의하면 태안이씨(泰安李氏)의 시조(始祖)는 중국 송(宋)나라 사람인 이욱(李煜)으로 925년(태조 8) 고려(高麗) 들어와 농서공(瀧西公)에 봉해졌으며, 그의 7세손인 기(奇)는 고려 광종(光宗) 때부터 태안(泰安)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 후 욱(煜)의 후손 천(蕆)이 태안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고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태안(泰安)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태안(泰安)은 충청남도(忠淸南道) 서산군(瑞山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성대혜현(省大兮縣) 또는 성대호현(省大號縣)이었는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소태(蘇泰)로 고치고 뒤에 소주(蘇州)로 개칭하여 부성(富城:서산)군(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高麗) 현종(顯宗) 때 연주(蓮州:홍주)에 예속시켰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태안(泰安)으로 고쳤고, 1416년(조선 태종 16) 군(郡)으로 승격시켰다가 1913년 서산군(瑞山郡)에 병합되어 면(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역임한 회(薈)는 성품이 강직하여 사간(司諫)으로서 직언을 하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검상(檢詳)으로 승려였던 청준(淸濬)이 그린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彊理圖)」를 증수(增修)하여 우리나라 지도에 혁신을 가져온「팔도도(八道圖)」를 그렸다.

조선 때 판서(判書)를 지낸 배일(培一)과 참판(參判)을 역임한 길장(吉長),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세익(世益) 등은 명문인 태안 이씨(泰安李氏)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안이씨(泰安李氏)는 남한(南韓)에 4,3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 태안이씨조상인물

이양환(李陽煥) 자(字)는 백온(伯溫), 호(號)는 서계(西溪), 시호(諡號)는 문목(文穆), 고려조(高麗朝)에 태사(太師)를 역임하였다.

이암(李 岩) 자(字)는 군산(君山), 호(號)는 벽동(碧洞). 고려(高麗) 때 좌상(左相)에 이르렀다.

이조(李 慥) 자(字)는 무맹(茂孟), 호(號)는 죽산(竹山). 고려조(高麗朝)에 판서(判書)에 올랐다.

이천(李 蕆) 자(字)는 언화(彦華). 고려(高麗) 때 대사도(大司徒)에 이르렀다.

이영수(李英秀) 자(字)는 춘부(春夫), 호(號)는 철관(鐵冠),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고려조(考慮朝)에 전리 판서(典理判書)를 역임했다.

이회(李 薈) 자(字)는 무숙(茂叔), 호(號)는 송곡(松谷),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고려 우왕(禑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 1392년 조선개국(朝鮮開國) 후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냈으며, 1402년(태종 2)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彊理圖)」를 증수(增修)하여 새로운 우리나라 지도 「八道圖(팔도도)」를 그려 바쳤다.

이처운(李處耘)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요년(李堯年) 자(字)는 인로(仁老).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이주(李 柱) 조선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이순석(李順碩) 조선조(造船朝)에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였다.

이정립(李挺立) 자(字)는 사호(士豪).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이의(李 薿) 자(字)는 중고(仲高).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이흘(李 屹) 자(字)는 계고(季高). 조선(朝鮮)시대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이징(李 徵) 조선(朝鮮) 때 사과(司果)를 역임했다.

이정신(李挺信)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배일(李培一) 자(字)는 군회(君會). 조선 때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이길장(李吉長) 자(字)는 여택(汝澤). 조선조에 참판(參判)에 올랐다.

이원옥(李元玉) 자(字)는 영화(永和).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했다.

이순빈(李舜賓) 조선시대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세익(李世益) 자(字)는 여실(汝悉).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이명길(李命吉) 조선조(朝鮮朝)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이인민(李仁敏) 조선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했다.

이응복(李應福) 조선(朝鮮) 때 첨지(僉知)를 지냈다.

이계우(李繼禹) 조선시대에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이중현(李重顯)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