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초산이씨시조(楚山李氏),이훤(李藼),초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2:28 수정일 : 2018-07-20 14: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초산(楚山)은 정읍(井邑)의 옛 지명(地名)이며, 정읍은 전라북도 남부 중앙에 위치하는 군으로 본래 백제의 정촌현(井村縣)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정읍(井邑)으로 고쳐서 태산군(泰山郡 : 현재의태인)에 속하였고, 고려조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후에 감무(監務)를 두고 조선 때 현감(縣監)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32) 정읍군으로 승격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부군의 15개면, 정읍군의 8개면, 태인군의 18개면이 합하여 정읍군이 설치되었다.

초산이씨(楚山李氏)의 시조(始祖) 이훤(李藼)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춘방시 학사(春坊侍學士)를 지내다가 고려의 국운(國運)이 기울어지고 조선(朝鮮)이 개국되자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을 지켜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지낸 사위 박 원(朴 洹)과 함께 초산(楚山)으로 낙향(落鄕)하여 스스로 산림처사(山林處士)라 칭하며 시문(詩文)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훤을 시조로 받들고 초산(楚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인물

가세(家勢)를 일으킨 대표적인 인맥(人脈)으로는 후손 영춘(榮春)이 임진왜란 때 수문장(守門將)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고, 덕귀(德龜)는 효행(孝行)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편 호장(戶長) 신귀(神龜)의 아들 희담(熙聃)은 학문(學問)이 뛰어나 문하에서 많은 후학을 길렀으며, 아들 국렬(國烈)과 함께 <호남영방(湖南營房)>의 선생(先生)으로 추대되어, 학덕(學德)과 인품으로 빈민구휼(救恤)에 앞장섰던 기영(基瑛)과 더불어 초산이씨(楚山李氏)를 더욱 빛냈다.

역대인물-초산이씨조상인물

이극문(李克文)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이아(李 芽) 조선조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이상(李 祥)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이영배(李榮培) 조선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영춘(李榮春)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수문장(守門將)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몽흥(李夢興) 조선조(朝鮮朝)에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후관(李厚管) 조선에서 호장(戶長)을 역임하였다.

이천로(李天老) 조선(朝鮮)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채귀(李彩龜) 일명(一名) 원규(元奎). 조선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신귀(李神龜) 일명(一名) 진규(震奎). 조선에서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덕귀(李德龜) 일명(一名) 현규(顯奎), 호(號)는 석천거사(石泉居士).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영방(營房)의 영사(營史)로 근무하면서 선영을 모시고 위토를 마련하였다.

그가 남긴 유고가 초산이씨족보(楚山李氏族譜)를 창보(創譜)할 때 귀중한 자료가 됐다

이희담(李熙聃) 학문이 뛰어나 호남(湖南) 영방(營房)의 선생으로 추대 되어 많은 학도를 가르쳤다.

이국렬(李國烈) 문예에 통달한 학자로서 호장(戶長)을 지내고, 1777년에 호남(湖南) 영방(營房)의 선생으로 추대되어 학도를 가르쳤다.

이정실(李廷實) 조선(朝鮮)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기영(李基瑛) 덕이 높고 인자하여 많은 사람을 구휼했으며, 벼슬은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이관진(李瓘鎭) 조선조(朝鮮朝)에 호장(戶長)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