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안이씨시조(淸安李氏),이학년(李鶴年),청안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1:56 수정일 : 2018-08-10 11:21

시 조

청안이씨시조(淸安李氏)는 이학년(李鶴年)으로 고려 광종(光宗) 때 예부 상서(禮部常書)를 지냈고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청안(淸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청안(淸安)은 충청북도 괴산군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1405년(태종 5) 청주(淸州)에 속해있던 청단현(靑塘縣)과 도안현(道安縣)을 합하여 청안현이라 하다가 1895년(고종 32) 청안군(郡)으로 승격하였으나, 1914년 군(郡)을 폐하고 서면(西面)은 청주에 편입하고 나머지 일원은 괴산으로 편입해서 처안면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학년(鶴年)의 후손(後孫) 한번(漢藩)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홍건적(紅巾賊)을 대파하여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으며, 아들 광경(光慶)은 조선(朝鮮)에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낸 후 호남파(湖南派)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항상(恒相)은 아들 양길(陽吉)은 상장군(上將軍)으로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벽상일등공신(壁上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으며 영남파(嶺南派)의 중시조로 분파되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안이씨(淸安李氏)는 남한(南韓)에 18,27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안이씨조상인물

이하영(李夏榮) 호(號)는 묵당(墨堂). 고려(高麗) 때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다.

이사윤(李思潤) 호(號)는 뇌곡(磊谷). 고려 때 감사(監司)를 지냈다.

이한번(李漢藩) 자(字)는 서상(瑞相), 시호(諡號)는 충간(忠簡). 고려 충숙왕(忠肅王)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고, 1363년(공민왕 12)에 홍건적(紅巾賊)을 격파한 공으로 청안군(淸安君)에 봉해했다.

이양길(李陽吉) 시호(諡號)는 충원(忠元). 고려 공민왕조(恭愍王朝)에 예빈시 동정(禮賓寺同正)으로 있으면서 직간(直諫)을 하다 제주 판관(濟州判官)으로 좌천되었으며, 1356년(공민왕 5)에는 상장군(上將軍)으로 홍건적(紅巾賊)을 대파하여 벽상일등공신(壁上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다.

이광경(李光慶)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조선(朝鮮) 태종(太宗)때 전라(全羅)․충청 병마절도사(忠淸兵馬節度使)․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이존학(李存學) 조선에서 참판(參判)을 지냈다.

이존신(李存信) 조선(朝鮮) 때 교리(校理)를역임하였다.

이종주(李從周) 시호(諡號)는 정원(貞元). 조선(朝鮮) 때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이숭문(李崇文) 조선조(朝鮮朝)에 정랑(正郞)을 지냈다.

이선(李 旋) 조선조에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이배(李 培) 조선 때 승지(承旨)를 지냈다.

이재(李 堤)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이등(李 登) 조선조에 제공(提控)․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이임(李 臨)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이지(李 地) 호(號)는 퇴은(退隱). 조선에서 현령(縣令)을 지냈다.

이육(李 堉) 자(字)는 사후(士厚), 호(號)는 심원당(心遠堂).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이기(李 基) 호(號)는 신재(愼齋). 1452년(문종 2) 원종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으로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고, 1474년(성종 5)에는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이두남(李斗南)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副事)를 역임하였다.

이원종(李元宗) 호(號)는 소흥(沼興). 조선 때 훈도(訓導)를 지냈다.

이한방(李翰邦) 조선(朝鮮) 때 정랑(正郞)을 지냈다.

이흥방(李興邦)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경방(李經邦)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응벽(李應壁) 호(號)는 칠송당(七松堂).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응춘(李應春) 호(號)는 퇴사재(退思齋).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활동을 하다가 개운포(開雲浦)에서 순절(殉節), 그후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이팽수(李彭壽) 호(號)는 두촌(杜村).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울주 서생포(蔚州西生浦)에서 순절(殉節),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이대립(李大立) 호(號)는 야포(野圃),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훈도(訓導)를 지냈다.

이대인(李大仁) 자(字)는 여원(汝元),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이태립(李台立) 호(號)는 남계(南溪), 조선 때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역임했다.

이덕매(李德梅) 조선조에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을 역임하였다.

이방린(李芳隣) 호(號)는 동호(東湖).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유린(李有隣) 호(號)는 퇴와(退窩). 조선(朝鮮)에서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이광린(李光隣) 호(號)는 수와(睡窩). 조선 때 봉사(奉事)를 지냈다.

이계수(李繼秀) 호(號)는 영풍정(詠風亭). 조선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이승금(李承金)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이삼한(李三韓)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눌(李 訥) 호(號)는 낙의재(樂義齋). 조선(朝鮮) 때 영장(領將)을 역임하였다.

이술현(李述賢) 호(號)는 인와(忍窩). 조선조(朝鮮朝)에 조봉대부(朝奉大夫)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역임하였다.

이운춘(李運春) 호(號)는 운암(雲岩),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수인(李樹仁) 호(號)는 구암(懼菴).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이승연(李昇淵) 조선 때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