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송이씨시조(靑松李氏),이덕부(李德富),청송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1:50 수정일 : 2018-07-20 14:2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송이씨(靑松李氏)의 시조(始祖)는 이덕부(李德富)로 벽진 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棇言 : 벽진이씨의 시조)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어 상고(詳考)할 수 없다.

덕부(德富)는 원래 경주(慶州)에서 살다가 성주(星州)로 이거(移居)하여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렀으며, 그의 5세손 우(祐)가 나라에 공(功)을 세워 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에 봉해졌다고 「청송이씨세보(靑松李氏世譜)」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본관(本貫)을 청송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청송(靑松)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중부 동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청기현(靑己縣)인데 신라(新羅) 때 적선(績善)으로 고쳐서 야성군(野城郡 : 현 영덕군)에 속했다가, 고려(高麗) 초에 부이현(鳧伊縣)이 되고 운봉(雲鳳)으로 고쳐서 예주(禮州 : 영해)에 속했다.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진보현(眞寶縣)에 합하였고 1419년(세조 원년)에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 후에 진보와 분리되고 송생현(松生縣)과 합하여 청송(靑松)으로 개칭하였으며 부(府)로 승격하고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덕부(德富)의 아들 당유(唐兪)가 고려에서 소보(少保)를 지냈으며, 번(蕃)은 덕부(德富)의 8세손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금어대(金魚袋)를 하사(下賜)받았고, 벼슬은 판양양도호부사(判襄陽都護府使)에 이르러 훌륭한 청송 이씨(靑松李氏)의 가문(價文)을 빛냈다.

그 밖의 인물로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대영(大榮)과 시장(時章)이 뛰어났으며, 동무(東茂)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여 덕망높은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송이씨(靑松李氏)는 남한(南韓)에 총 247가구, 81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송이씨조상인물

이당유(李唐兪) 고려조(高麗朝)에 소보(少保)를 역임하였다.

이원필(李元弼) 고려 때 부령(副令)을 지냈다.

이조(李 祚) 고려에서 시랑(侍郞)을 역임하였다.

이성유(李成裕) 고려(高麗)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이번(李 蕃) 고려조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이흥문(李興門) 조선조(朝鮮朝)에 안무사(按撫使)를 역임하였다.

이응후(李應厚) 조선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이중운(李仲雲) 조선(朝鮮)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이득천(李得天)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이대영(李大榮)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이시장(李時章)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시화(李時華)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지냈다.

이원식(李元植) 조선 때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이병호(李炳昊) 자(字)는 성보(成甫), 호(號)는 춘사(春史). 조선(朝鮮)때 통신사(通信司)를 지냈다.

이동무(李東茂)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이승식(李承植)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처식(李處植)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