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창녕이씨시조(昌寧李氏)이정현(李正賢),창녕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1:27 수정일 : 2018-07-20 11:4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창녕이씨(昌寧李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 과거에 급제하고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낸 후 창산군(昌山君)에 봉해진 이정현(李正賢)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창녕(昌寧)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창녕(昌寧)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북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比斯伐)인데, 555년(진흥왕 16) 하주(下州)라 칭하고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는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창녕(昌寧)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 : 밀양)에 귀속되었다가 인조조(仁祖朝)에 현(縣)으로 복귀,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되었으며 1914년에는 영산군(靈山郡)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정현(正賢)의 아들 원간(元幹)이 교수(敎授)를 지냈고, 손자 구엽(九燁)은 우상시(右常侍)를 역임했다.

정현(正賢)의 증손(曾孫)인 문화공(文華公) 한직(漢直)은 벼슬이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귀춘(貴春)은 현감(縣監)을, 손자 연무(衍茂)는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그 밖의 인물로는 부정(副正)을 역임한 국추(國樞)의 아들인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대임(大任)이 유명했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여러 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茂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학자(學者) 홍진(弘進)은 학문이 뛰어나, 향리(鄕里)에서 후진양성에 전념(專念)하여 문화에서 훌륭한 인재(人材)가 많이 배출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운기(運基)와 함께 명망있는 창녕 이씨(昌寧李氏)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창녕이씨(昌寧李氏)는 남한(南韓)에 3,6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창녕이씨조상인물

이원간(李元幹) 자(字)는 천측(天則). 고려 때 교수(敎授)를 지냈다.

이구엽(李九燁) 자(字)는 형화(亨華), 호(號)는 운곡(雲谷), 시호(諡號)는 문숙(文淑). 고려 때 우상시(右常侍)를 지냈다.

이한직(李漢直) 자(字)는 예명(禮明), 호(號)는 한헌(寒軒), 시호(諡號)는 문화(文華). 고려조에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이귀춘(李貴春) 고려조(高麗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연무(李衍茂) 조선조(朝鮮朝)에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이방주(李邦柱) 조선 때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이숭원(李崇元) 조선에서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지냈다.

이시방(李時芳) 조선(朝鮮) 때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다.

이국추(李國樞) 조선 때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역임하였다.

이대임(李大任) 자(字)는 사중(士重), 호(號)는 죽계(竹溪).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으며, 학삼 서원(鶴三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이홍진(李弘眞) 호(號)는 만로당(晩魯堂). 조선 때 학자(學者)로 학문에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을 쏟아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이운기(李運基) 호(號)는 암재(巖齋),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으며,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