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주이씨시조(晋州李氏),이군자(李君梓),진주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1:05 수정일 : 2018-07-20 10:5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주이씨(晋州李氏)의 시조(始組)는 조선 초(朝鮮初)에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이군자(李君梓)이다.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 : 경주 이씨의 시조)의 18세손인 군자(君梓)는 조선(朝鮮) 태조(太組)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왕(王)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성천(成川)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며, 대제학(大提學)을 사임(辭任)하고 고향인 진주(晋州)로 내려가 있는 형 영자(永梓)를 생각하며 본관(本貫)을 진주(晋州)로 삼았다고 한다.

진주(晋州)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烈城)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문무왕(文武王 : 제 30대왕, 재위기간 : 661~681)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康州)로 고쳤다가 뒤에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다시 강주로 환원하였고, 995년(성종 14)에 진주(晋州)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뒤 조선조(朝鮮組)에 와서는 진양도호부(晋陽都護府)가 되기도 하였으나 진주목(晋州牧)으로서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에 진주시(晋州市)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후손으로는, 군자(君梓)의 아들 영실(英實)이 감찰(監察)을 역임했고, 증손(曾孫) 의동(儀東)은 통사랑(通仕郞)을 지냈다. 그 외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낸 승부(承富)는 통사랑(通仕郞) 의동(儀東)의 아들이다.

치언(致彦)은 영조(英祖) 때 과거에 올라 도사(都事)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주이씨(晋州李氏)는 전국에 총 4,41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진주이씨조상인물

이영실(李英實)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지냈다.

이의동(李儀東) 조선 때 통사랑(通仕郞)에 이르렀다.

이승부(李承富) 조선조(朝鮮祖)에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이인부(李仁富)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이치언(李致彦) 조선조(朝鮮祖)에 도사(都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