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보 · 진성이씨, 진성이씨시조,이석,진성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5 10:26 수정일 : 2018-08-14 12:40

진보 · 진성이씨 연원(眞寶 · 眞城李氏 淵源)

진보 · 진성이씨시조 이석(李碩)은 고려말에 진보현리로서 사마시에 합격하고 진사로 있었다. 그의 아들 자수(子脩)가 귀하게 되어 봉익대부 밀직사에 추증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석을 시조로 모시고 진보 · 진성을 관향으로 계승하고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어 명문거족이 되었다.


관향지의 연혁

관향지 연혁은 본래 칠파화현을 신라 경덕왕이 진보로 고치고 문소군 영현으로 삼았으며. 조람현을 경덕왕이 진안으로 고치고 야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는데, 고려 초에 진보현과 진안현을 합하여 보성부(재암성)를 설치하였다. 고려 현종 때 다시 예주에 귀속시켰는데 뒤에 왜구로 인하여 주민들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조선 태조가 보성감무를 두었고 세종은 청부에 합쳐 청보군으로 하였다가 다시 진보로 고쳐 현감을 두었다. 성종5년에 청송에 편입 했다가 성종9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고종321895년에 군으로 하였다가 1914년에 군을 폐하고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에 속하고 나머지는 청송군에 병합하였다.

관향 진보의 유래 : 경덕왕 지명 개정시 영덕대소산봉화가 청송광산봉수대를 거쳐 반듯이 이 지역 남각산봉수대를 통과케 되므로 이곳이 참으로 보배스러운 곳이라는 뜻에서 진보로 정명하게 된데서 유래하였다.

관향 진성의 유래 : 신라 헌덕왕때 왕족계의 일계가 왕통정통성과 우국 복고의 단층아래 여러 곳 전란을 거쳐 진성현에 도착하여 진보현 내 중심지(현 영양읍, 석보면. 입암면 일대)를 위요한 평지 모래밭 곳곳에 성을 쌓아 진을 치고 이곳 전체를 도성으로, 치소 진보성과는 달리 진성현명을 취() 진성으로 정명, 후일 진성경계 에서 전투했다. 진성.진보현명을 소고(湖考)하면 동일지역 이명(異名) 관향 구호(舊號)이다.


주요 인물-진성이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

이자수(李子脩) : 1330년 고려 충숙왕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1362(공민왕11)에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안사공신 송안군(松安君) 에 봉해지고 통헌대부 판전의시사에 올랐다. 안동 작산정사에 배향되었다.

이자방(李子芳)소과에 합격하였으나 백패(白牌)를 분실하여 자손들이 환역(還役)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물

이운구(李云具) 통정 대부 공조참의

이운후(李云侯)통훈대부 군기시부정

이양검(李旋儉)통훈대부 합천군수

이양호(李淡浩) : . 師聖, 주부

이정(李 禎) 세종조 정북적유공 록원종훈, 영변판관한산, 선산 병 유애. 선정비가 세워졌다. 증 참판

이기담(李基聃) : 현감

이여담(李如聃) : 정랑

이우양(李遇陽) : 무과급제 현감

이홍양(李興陽) 무과급제 참군

이계양(李維陽) 자 말보 호 노송정. 중종반정시 보조공신에 서훈되고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 진성군에 봉해 졌다. 예안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이윤형(李允貞) : 별시위 효행정려

이식(李 植) 器之, 진사 안동 청계서원에 배향

이우(李 塘) : (1469-1517). 明仲. 松齋. 연산조에 문과에 급제, 중종반정에 유공하여 정국공신 청해군에 봉해지고 경상도관찰사 안동부사 호조참판을 역임했다. 관동행록 및 동국사략과 문집을 저술하였고 시문에도 능하였다. 안동 청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이훈(李 地) : (1467-1539) 子和. 부호군

이해(李 湘) : (1496-1550) 景明. 溫溪. 시호는 貞愍이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 문형에 올랐으며 을사사화 순절신에 선록되었다. 대사헌 예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예서에 뛰어나 필명을 얻었으며 대사헌 때 권신 우의정 이사(李邑)를 탄핵하여 파면케 했다. 아우 퇴계(退溪)와 도의상마(道義相磨)로 세칭 금곤옥계(金昆玉季)라 일컬었으며 숙부 우()를 모시고 아우 황()과 더불어 문호를 여는데 이바지 하였다. 문집이 있고 영주 삼봉서원, 안동 청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이황(李 滉) : (1501-1570) 景浩. 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암행 어사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양관 대제학 우찬성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호당에 뽑히고 청백리에 선록되고 영의정에 추증 되었다.

정자와 주자의 도학을 이어받아 동방의 표준이 되었 고 주자학을 집대성하였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이학통론(理學通論), 계몽전의(啓蒙傳疑), 경서석의(經書釋義),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퇴계집(退溪集)49(정본 작업 중 총권수 증가분 미계제)을 저술하였다.

교육사업에 주력하여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서원을 내리게 하였다. 도산서원을 창설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온 정성을 다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문묘 및 선조 묘정에 배향되었고 단암서원, 도산서원 등을 비롯하여 전국 수십개 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