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장흥이씨시조(長興李氏),이다조(李多祚)

작성일 : 2017-05-04 15:23 수정일 : 2018-04-07 16:3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장흥(長興)은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인데 신라 때 오아(烏兒)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해 있다가 고려 때 영암(靈巖)에 소속되고, 인종(仁宗) 때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1265년(인종 6)에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장흥부(長興府)가 되었다.

그 이후 많은 변천을 거쳐 1895년에 장흥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폐합에 따라 웅치(熊時) · 회천(會泉) 2개 면이 보성군에 이관되었으며, 1936년 부동면(府東面)올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南上) · 남하(南下) 양면을 용산면(蓉山面)으로, 고읍면(古邑面)을 관산면(冠山面)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하고, 1980년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 하였다.

장흥이씨(長興李氏)의 시조(始祖) 이다조(李多祚)는 당나라 황족으로 그의 조상이 농서군왕에 봉해졌기에 본관을 농서라 하였다. 그는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말갈(昧關)의 난을 평정하고 고종(高宗) 때 장이지(張易之) · 장창종(張昌宗) 형제의 전횡을 다스린 공으로 요양군왕(遼陽郡王)에 봉해졌다.

후손 관진(冠珍)이 송나라 철종조에 이부 상서(吏部尙書)로 있을 때 큰 난리가 났는데 그 난리를 평정하지 못하여 참소를 당해 고구려로 도피해 왔으며, 그 후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정벌장군(征伐將軍)으로 여진을 무찌르다 전사했다.

관진의 9세손 처유(處柔)는 공양왕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부르자 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흥으로 유배되었는데 이때부터 후손들이 장흥(長興)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 하면서 이다조(李多祚)를 시조로, 관진(冠珍)을 중조로, 처유(處柔)를 이관조(移貫祖)로 받들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을 보면 현손(玄孫)이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府使)를 지내고, 병조 참판(兵曺參判)에 증직되었으며 난(蘭)과 인서(麟瑞)가 각각 부사과(富司果)를 역임 했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장흥이씨(長興李氏)는 남한(南韓)에 총 487가구, 2,11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1,935명이 거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