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천이씨시조(寧川李氏),이능간(李凌幹),영천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3 10:18 수정일 : 2018-07-18 11:15

영천이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천이씨(寧川李氏)의 시조(始祖) 이능간(李凌幹)은 고려의 이름난 명신(名臣)으로 충선왕(忠宣王)이 토번(吐蕃)으로 귀양 가자 역줄을 시켜 금(金)을 바쳐 왕과 소종신(麗從臣)의 옹색을 면하게 했으며. 원나라가 고려에 성(省)을 두려고 하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원제(元 帝)에게 주청(奏請)하여 이를 중지시켜「토좌당(兎左堂)」 이라는 사림(士林)의 액호(額號)를 받았고, 충혜왕(忠惠王) 때 조적(曺 頓)의 난이 일어나자 문하시중(文下侍中)으로 왕을 호종(悳從)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영천(寧川)으로 삼아 세계 (世系)를 이어왔다.

영천(寧川)은 남원(南原)의 고호(古號)로 전라북도에 위치하며. 본래 백제의 고룡군(古龍郡)인데 삼국통일기(三國統一期)에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패망시키고, 대방주(帶方州)라 하여 일시 지배하였다. 후에 신라의 문무 왕(文武王)이 합병하고, 통일신라의 신문왕(神文王) 때 소경(小京)을 두었으며 경덕왕 때 남원으로 고쳤으나, 여전히 소경이라 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일시 대방이라 하였으나 남원부(南原府)로 지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로서 1부 1군 9개 현을 관할하였고 1914년 남원군(南原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상서(尙書)를 지낸 명 (銘)과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층절로 두문 동(杜門洞)에 들어가 일생 (一生)을 마친 능간(凌幹)의 손자 상휴(湯休), 그의 아들로 조선조(朝鮮朝)에서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관직에 나가지 않고 현금(玄琴)을 즐겼던 분(芬)이 유명했다.

그밖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중엽(重燁) · 부춘(富春) · 재성(在誠) 등과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된 덕근(德根) · 복겸(福謙)이 영천이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천이씨 (寧川李氏)는 전국에 총 135,61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영천이씨조상인물

이상휴(李湯休) : 고려조(高麗朝)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1392년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세우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두문동 서원(杜門洞書院)에 배향(配¥)되었다.

이분(李 芬):호(號)는 묵응(默翁), 상휴(湯休)의 아들로 아버지의 명(命)을 받들어 관직에 나가지 않고 거문고를 즐겨 「천묵묵지묵묵아역묵묵(天默默地默默我亦 默默)」이란 곡(曲)을 지었다.

이중엽(李重燁):자(字)는 화중(華中). 조선(朝鮮) 때 동몽(童蒙) 교관(敎官)을 역임하였다.

이부춘(李富春):자(字)는 걸보(吉甫). 조선(朝鮮) 때 동몽 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이상규(李尙奎) : 자(字)는 천민(天民). 조선조(朝鮮朝)에 동몽(童蒙) 교관(敎官)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