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양주이씨시조(楊州李氏),이석숭(李碩崇)

작성일 : 2017-05-02 09:38 수정일 : 2018-04-17 21:1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양주(楊州)는 경기도(京畿道)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매성군(買城郡) 혹은 창화군(昌化郡)이라 하였는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내소(來蘇)로 고치고 고려(高麗) 초에 견주(見州)로 승격하였다가 1668년(현종 9) 양주(楊州)에 속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는 다시 양주(楊州)로 개칭한 뒤 1895년(고종 32) 목(牧)을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양주이씨(楊州李氏)의 시조(始祖) 이석숭(李碩崇)은 양주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한 사족(士族)의 후손으로, 조선(朝鮮)에서 진사(進士)를 지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정확한 계대(系代)는 알 수 없고, 후손들이 석숭(碩崇)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양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人物)로는 석숭의 아들 배근(培根)이 조선조에서 보공장군(保功將軍)에 올랐고, 손자 계간(繼幹)이 부위(副尉)를 지냈으며, 증손(曾孫) 결(潔)은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이외에도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기영(技英),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제흡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인수(仁遂),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진혁(振赫) 등은 빼놓을 수 없는 양주이씨(楊州李氏)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양주이씨(楊州李氏)는 남한에 총 286가구, 1,26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72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