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안성이씨시조(安城李氏) ,이중선(李仲宣)

작성일 : 2017-05-01 18:40 수정일 : 2018-02-15 13:44

안성이씨(安城李氏)의 연원(淵源)

안성이씨시조(始祖) 이중선(李仲宣)은 중국 감숙성(中國 甘肅省) 농서이씨(隴西李氏)로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이태백(李太白)의 황족(皇族)의 후손(後孫) 청론계(靑綸系) 맹선(孟宣), 중선(仲宣), 계선(季宣) 삼형제중 둘째 분으로 고려문정(高麗文宗)때인 서기(西紀) 1078년 송(宋)나라 사신(使臣)으로 左諫義 安燾 陳睦와 같이 래려(來麗)하여 문종(文宗)의 어청(御請)으로 세자 세손(世子 世孫)의 사부(師傳)를 수임정주(定住)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경군호장(京軍戶長)으로 치민선정(治民善政)의 공을 세우고 거듭 천거되어 문화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순종(順宗), 선종(宣宗), 헌종(獻宗) 때까지 넷 임금님을 모시었다.

헌종(獻宗)때 이자의(李資義) 역모(逆謀)난을 상장군 王國髮 등과 더불어 사직(社稷)의 위태로움을 평정하신 공훈(功勳)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 현 국무총리(現 國務總理)로 승진함과 동시 삼한벽상공(三韓壁上功)과 안성군(安城君)으로 책봉(冊封)되어 후손들이 백하(白夏) 현 안성(安城)을 관향(貫鄕)으로 삼게되었다.

이영(李永)은 어사대사(御使臺事) 보문각학사(寶門閣學士)를 역임하였고 이원장(李元長)은 서해안염사(西海按簾使)를 지내는 등 삼대(三代)에 걸쳐 정계(政界)의 상층권(上層圈)에 사조(事朝)하였다.


씨족사의 개요

시조 李仲宣은 4왕조에 出仕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헌종이 병약하여 숙종에게 왕위를 넘길 때의 충격과 그 뒤로 거듭되는 문란한 세태를 개탄, 封君地인 安城에 낙향,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런 아버지의 고매한 뜻을 받아 耕田勸學하던 아들 李永은 숙종 때 문과에 올라 直吏館이 되었다. 뒤에 知京山府事를 거쳐 禮部侍郞․右諫議大夫를 역임하고 인종 초에 知御吏臺事, 寶文閣學士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예종 17년 李資謙이 韓安仁을 죽일 때 남매간이라는 인척관계로 연좌, 珍島에 유배당하였다. 그뒤 어머니와 아들들이 노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橫死하는 비극적인 인생을 마쳤으나 簽書樞密院事에 추종되었다. 손자 李元長은 예종 때 西海道按廉使에 올랐다. 이때 李資謙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됨으로써 그의 부자는 伸寃되었다.

그의 후손 중 증손 6형제 가운데 李克儼 한분 말고는 모두 失傳되었다. 따라서 閤門副使를 지낸 5세 李玖의 아버지는 失諱된 분이다. 마찬가지고 吏部侍郞公派로 明經料에 올라 中郞將을 거쳐 吏部侍郞이 된 뒤, 陽廣道撫使를 지낸 6세 李禧도 그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없다. 兵部尙書公도 그러하다 곧 6세 李裕는 벼슬이 匡靖大夫 僉議評理와 上護軍을 거쳐 兵部尙書에 오른 분인데, 아버지와 조부의 이름을 알 수 없다.

左司郞中公派의 李晋昇은 벼슬이 檢校大將軍에 이른 분인데 앞서 밝힌대로 그의 증조부는 李克儼, 조부는 檢校中郞將을 지낸 李奇, 아버지는 李日休로 尙衣院에 出仕한 분이다.

密直副使公派는 4대가 失諱된 뒤 8세 李惟仁이 嘉翊大夫密直府使에 올랐고, 廣陵府院君派 역시 4대가 失諱, 8세 李共白이 廣陵府院君이 된 분이다.

安城李氏는 이렇게 李仲宣의 후손들인 6派 자손들이 宗支의 법통을 세워, 派系를 이루게 되었다. 좀더 자세히 이분드의 世蹟을 보면, 李禧는 號가 養性齋, 공민왕 23년 明經科에 올라, 中郞將이 되어 水軍을 개편하고 이어 楊廣道按撫使로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 뒤 사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聖賢書籍과 禮樂文典 등을 가져왔고 뒤에 吏部侍郞에 올랐다. 李裕는 兵部尙書에 이르렀는데, 李成桂의 권세를 막고자 鄭夢周와 함께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安城에 은퇴하고 말았다.

李惟仁은 密直副使에 오른 뒤 고려가 망하자 頭流山 排祿洞에 은거, 杜門洞72賢에 참여한 분이다. 또 李 은 號가 謚號는 文靖으로 門下侍中에 오른 분이다. 우왕 2년 문과에 올라 仁川․安山․富平․海豊 등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 전공을 세워 三重大匡 門下侍中으로 平倭大將軍이 되었다.

그뒤 우왕 14년 南原 등 三南地方에 침입한 왜병을 크게 격파한 공으로 推思靖亂補祚功臣에 책록되고 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李瑄은 典理判書로 淸白錄에 기재되었다. 그중 安城李氏의 역대 인물중 역사에 남는 걸출한 분은 李叔蕃이다. 吏部侍郞公派의 李 의 아들이다.

조선 태조 2년 문과에 올라 安山郡守가 되었고 李芳遠과 함께 鄭道傳․南--등을 제거,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定社2등功臣으로 安城君에 봉해졌고, 또 정조 2년 朴苞 등이 李芳幹을 받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이를 토평, 佐命공신이 되었다.

태종 2년 知承樞府事가 된 뒤 知議政府事․參贊議政府事를 거쳐 中軍摠制에 이어 判義勇巡禁司事에 올랐다.

태종 13년 兵曹判書, 이듬해 贊成으로 오르고 태종 15년 安城府院君에 進封되었다. 李仲蕃은 叔蕃의 아우로 三曹의 左郞을 거친 뒤 兵曹와 刑曹參議에 이르렀고, 형 李叔蕃과 더불어 定社功臣이 되고, 同副承旨와 中樞院判府事에 이르렀다. 뒤에 忠貞이란 謚號를 받았다.

그의 아들 李茂는 北鎭開拓에 끼친 공으로 역사에 알려진 인물이다. 北靑에 들어가 白戶阿代로 治民에 큰 업적을 남겨 入北派祖가 된 분이다. 閤門副使公派의 후손으로는 18세 李琇기 軍資監正을 거쳐 漢城左尹과 五衛都摠管을 지냈고 李后靖이 司憲府監察과 縣監을 역임했다. 吏部侍郞公의 후손으로는 14세 李秀垓가 中宗反正 때 原從功臣이 되었고 漣川縣監을 지냈으며, 아들 李安民은 忠翊衛定略將軍에 이르렀으며, 손자 李蒙--는 광해군 대 右贊成․春秋館 判義禁府事가 되었다. 손자 李繼先은 軍資主簿․宣務郞을 지냈고 廢母論 때는 栗洞에 퇴거하고 말았다. 아우 李繼後는 尙衣院判官을 지냈고 奇自獻의 천거로 兵曹參議에 오른 뒤, 형과 함께 廢母論 때는 栗里에 퇴거한 분이다.

아들 李希白은 咸興判官에 이어 慶尙兵馬節度使를 지냈고, 둘째 아들 李相白은 洪原郡守가 되었다. 忠貞公派로는 14세 李寬明이 副護軍이 되었고 아들 李壽幹은 工曹參議, 손자 李夢軾은 宣務郞 北部主簿, 증손 李挺立은 順陵參奉을 지낸 분이다. 安城李氏의 역대 인물 중에는 국난을 맞아 순절한 분도 많다. 대표적인 분으로는 李竹林을 들 수 있다. 그는 광해군 10년에 무과에 급제, 訓練院奉事가 되었다. 인조 15년 병자호란 때 그는 왕명을 받아 咸鏡道勤王兵을 총지휘하는 南營將이 되어 鐵嶺 방면에 후퇴하는 淸軍을 맞아 고군분투 전과를 올렸으나, 아우 李松林과 함께 순절하고 말았다. 또 李琠은 임진왜란 때 왕을 扈從하다가 왜적을 만나 역전 끝에 순절, 忠臣旌門이 세워졌다.


주요 世居地와 변천

6세의 대부터 貫鄕인 安城이 世居地로 지켜진 것으로 보아, 일찍이 安城땅에 자리잡고 살았던 것 같다.

“甲子譜”에 보면, 6세 李桂才의 자손들 중에서 8세 李副英이 辛旽의 亂을 보고 南部洞으로 퇴거한 이래 많은 자손들이 安城에서 살았고, 일부는 18세 李汝綱 이래로 전북 長水에 세거하였으며, 일부는 지금의 平澤郡 振威에 터를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8세 李泰英이 평남 中和에 유배된 이후 그 後系가 그곳에서 살았고, 일부는 13세 李權亨의 대를 전후하여 황해도 黃州로 옮겨진 것 같다. 한편 7세 李思正의 자손들은 13세 李秩의 後系가 평북 朔州에 살았고, 12세 李藩延이 세조가 等位하였을 때, 지금의 평남 順天郡에 속해 있는 殷山으로 퇴거하였으므로 이 무렵부터 그곳에도 자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李思正의 6대손. 李守唐의 後系는 황해도 金川의 兎山에 살았고, 李純諧의 後系는 경기도 開城에, 11세 李普의 後系는 함남 北靑과 端川에 나뉘어 살았다.

6세 李裕의 자손들은 安城에서 살다가 12세 李良鉉의 대부터 利川의 陰竹 등지로 옮겨가 세거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9세 李瑄의 대부터 경북 蔚珍의 平海에 세거의 터를 정했고, 12세 李石根 이래로 지금의 황해도 延白郡에, 8세 李共白 이래로 함남 甲山郡에 정착하였으며 李共白의 後系중 일부는 10세 李士龍의 대에 北靑에 이거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 현재 경기도 安城郡, 利川郡 栗面을 비롯하여 전북 長水郡 長水面, 경북 蔚珍郡 平海 盈德郡 寧海 일원, 강원도 江陵․襄陽, 황해도 延白郡 일원 金川郡 兎山, 평남 順川郡 仙沼面, 함경남도 甲山郡 鎭東面․會麟面, 北靑郡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