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아산이씨시조(牙山李氏),이주좌(李周佐),아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1 18:27 수정일 : 2018-07-27 13:45

시 조

아산이씨시조(牙山李氏 始祖) 이주좌(李周佐)는 경주 이씨의 시조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의 5세손이며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승훈(承訓)의 둘째 아들이다. 주좌(周佐)는 고려에서 형부(刑部) 상서(尙書)․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를 지냈고 사공(司空)에 추증(追贈)되었으며, 그의 후손 서(舒)가 원종(元宗) 때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벽상공신삼중대광(壁上功臣三重大匡)으로 아주백(牙州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아산(牙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아산(牙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시대에 아술현(牙述縣)인데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음봉(陰峰, 일명 陰岑) 또는 온정군령(溫井郡嶺)이라 하였고, 고려 초기에 인주(仁州)로, 그후 아주(牙州)로 고쳐 감무를 두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아산으로 고쳤고 온양․평택․신창의 3읍으로 분속되었다가 1476년(성종 7) 아산현이 되었으며 1895년 군이 되었고 1914년 온양․신창 두 군을 편입하여 지금의 아산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을 보면 옹(邕)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옹의 맏아들 천계(天桂)가 감찰(監察)을, 차남 천기(天杞)가 감정(監正)을 역임하였다. 또한 천계(天桂)의 아들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원생(原生)과 정언을 역임한 원명(原明)․원항(原恒) 3형제가 유명했고, 손자 종신(宗信)은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용(聳)의 맏아들 효반(孝盤)은 벼슬이 도첨의(都僉議)에 이르렀고, 차남 시반(時盤)은 중훈대부(中訓大夫)에 올랐다. 그 밖의 후손 중에서는 석번(碩蕃)이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홍(泓)과 대춘(大春)은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산이씨(牙山李氏)는 남한에 13,55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아산이씨조상인물

이지하(李枝夏) : 조선(朝鮮)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이종의(李宗義) : 조선조에 사인(舍人)을 역임했다.

이석(李 碩) : 조선 때 좌윤(左尹)을 역임하였다.

이동하(李東夏) :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종신(李宗信) : 조선조(朝鮮朝)에 정자(正字)에 이르렀다.

이석번(李碩蕃) : 자(字)는 석탄(石灘). 조선(朝鮮) 때 병조(兵曹)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이홍(李 泓) : 조선(朝鮮) 때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이대춘(李大春) : 조선조에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했다.

이공필(李公弼) :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이천(李以天) :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이언청(李彦昌) : 조선(朝鮮) 때 도사(都事)를 지냈다.

이진(李 珍) : 조선조(朝鮮朝)에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이몽상(李夢相) : 조선조(朝鮮朝)에 군기시(軍器寺) 정(正)을 역임했다.

이선정(李先正) : 조선 때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이선발(李先發) : 조선시대에 군기시(軍器寺) 정(正)에 올랐다.

이혜적(李惠迪) : 조선(朝鮮) 때 좌윤(左尹)을 역임하였다.

이제(李 濟) :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계창(李啓昌) : 조선조(朝鮮朝)에 장악원(掌樂院) 정(正)을 역임하였다.

이세충(李世忠) : 조선 때 사복시(司僕寺) 정(正)을 역임하였다.

이인화(李寅華) :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했다.

이정명(李廷明) : 조선 때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냈다.

이하진(李夏鎭) : 조선조에 도정(都正)에 이르렀다.

이척(李 陟) :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중명(李重明) : 호(號)는 안곡(安谷). 조선 때 봉사(奉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