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부안이씨시조(扶安李氏),이지발(李之發),부안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01 14:25 수정일 : 2018-04-17 21:2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부안이씨(扶安李氏)의 시조(始祖) 이지발(李之發)은 1471년(성종 2) 장사랑(將仕郞)에 올랐고, 평북(平北) 용천(龍川)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였으며, 그의 후손 봉정(奉禎)은 숭록대부(崇祿大夫)로 보안(保安 : 부안의 별호) 군(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부안(扶安)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부안(扶安)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서부 변산반도(邊山半島)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부령(扶寧)․보안(保安)의 합명(合名)이다. 부령(扶寧)은 본래 백제(百濟)의 개화현(皆火縣) 또는 계발현(戒發縣)이었는데, 통일신라 때 경덕왕(景德王)이 부령(扶寧)으로 고쳐 고부군(古阜郡)에 편입시켰고 다시 설치하여 보안(保安)을 겸임하였다. 1416년(태종 16) 보안(保安)을 병합하여 부안(扶安)으로 고치고 현(縣)으로 삼았다가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고부군(古阜郡)의 백산면(白山面)․거마면(巨麻面)․덕림면(德林面)을 편입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부안이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시조 지발(之發)의 아들 계란(季蘭)은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무(茂)는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했다.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정추(廷樞)․윤섭(允燮)․명근(命根) 등은 학문으로 덕망이 높았으며 응규(應奎)는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방혁(邦赫)은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여 문명(文名)있는 가문(家門)임을 널리 알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안이씨(扶安李氏)는 남한(南韓)에 4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부안이씨조상인물

이계란(李季蘭)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이무(李 茂)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이필(李 弼) 조선조(朝鮮朝)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이봉정(李奉禎) 조선 때 보안군(保安君)에 봉해졌다.

이봉춘(李奉春) 조선(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례(李 禮)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정추(李廷樞)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의춘(李宜春) 조선조에 통저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이윤섭(李允燮)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이명근(李命根)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명태(李命泰)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응규(李應奎) 조선(朝鮮) 때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하였다.

이방혁(李邦赫) 조선 때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이시진(李時陣)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