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담양이씨(潭陽李氏)의 시조 이덕명(李德明)은 백제 때 신평호장을 지낸 인수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작성일 : 2017-04-30 10:15 수정일 : 2017-11-20 16:4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담양이씨(潭陽李氏)의 시조(始祖) 이덕명(李德明)은 백제(百濟) 때 신평호장(新平戶長)을 지낸 인수(仁壽)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상고(詳考) 할 수 없다.

그는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신평(新平)에서 분적(分籍)하여 그를 시조(始祖)로 삼고 본관(本貫)담양(潭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담양(潭陽)은 전라남도(全裸南道) 북부(北部)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의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쳤고, 995(고려 성종 14)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鍊使)를 두었다가 후에 담양으로 고쳐서 나주(羅州)에 소속시켰다. 1199(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공양왕 3)에는 율원현(栗原縣)을 병합하였다.

1395(태조 4)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399(정종 1)에 부()로 승격하고, 1413(태종 13)에 도호부(屠戶府)가 되었으나, 1728(영조 4)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1895(고종 32)에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14년 창평군(昌平郡)이 폐지되자 담양군(潭陽君)에 병합되었다. 194년에 담양면(潭陽面)이 담양읍(潭陽邑)으로 승격돠었다.

시조 덕명(德明)의 아들 춘(椿)이 고려에서 추밀부사(樞密府使)를 지냈고, 손자 화()가 상서(尙書)를 역임했다.

그 외 상장군(上將軍) 승소(承召)와 산원(散員)을 역임한 예()가 이름났으며,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장령(掌令)을 역임한 견의(堅義)와 현령(縣令)을 지낸 탐룡(耽龍)이 가문을 빛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담양 이씨(潭陽李氏)는 남한(南韓)에 총 373가구, 1,20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이춘(李 椿) 고려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이화(李 和) 고려(高麗) 때 상서(尙書)를 지냈다.

이중경(李重卿) 고려에서도 도염서령(都染署令)을 역임하였다.

이승소(李承召) 고려(高麗)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이예(李 藝) 고려 때 산원(散員)을 역임했다.

이견의(李堅義) 조선조(朝鮮朝)에 장령(掌令)을 지냈다.

이탐룡(李耽龍) 조선 때 현령(縣令)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