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김포이씨시조(金浦李氏),이관중(李管仲),김포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9 17:47 수정일 : 2018-07-18 10:48

시조 및 본관의유래

김포이씨(金浦李氏)의 시조(始祖) 이관중(李管仲)은 금릉(金陵 : 김포의 고호)에서 누대(累代)에 걸쳐 토착세거(土着世居)해 온 사족(士族)으로 조선(朝鮮)에서 참봉(參奉)을거쳐 벼슬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으며, 손자 이창(李倡)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금릉부원군(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김포(金浦)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포(金浦)는 경기도 서쪽, 한강(漢江) 하구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의 검포현(黔浦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김포로 고쳐져 장제군(長堤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가 고려 1018년(현종 9)에 분리되어 명종(明宗) 때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198년(신종 1)에 이르러 현령(縣令)을 두었다.

1414년(태종 14)에 양천(陽川)을 합하여 금양현(金陽縣)이라 하고, 나중에 대시 양천은 금천(衿川)에, 김포는 부평부(富平府)에 합하였다가 1416년에는 다시 현으로 복귀시키고 현령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郡)이 되었으며 1914년에 양천(陽川)을 흡수하여 지금의 김포군(金浦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창(倡)의 맏아들 덕장(德章)이 공신(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금원군(金院君)에 봉해졌으며, 차남 성장(成章)은 참봉(參奉)을 지냈다.

그 외 명홍(命弘)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고, 경복(景馥)은 통덕랑(通德郞)을, 응룡(應龍)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김포이씨(金浦李氏)는 남한(南韓)에 7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김포이씨조상인물

이운선(李雲善) 조선조(朝鮮朝)에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이성장(李成章)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명홍(李命弘)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이영(李 榮)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이춘도(李春燾) 조선조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이경복(李景馥)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이응룡(李應龍) 영(榮)의 아들 조선조(朝鮮朝)에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고, 어모장군(將軍禦侮)에 올랐다.

이만균(李晩均) 조선조(朝鮮朝)에 학자(學者)였다.

이병진(李炳軫)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영징(李永徵)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세필(李世苾)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이광효(李光孝)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