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강진유씨(康津兪氏)의 시조 유적(兪迪)은 강진(康津)에 토착한 사족(士族)으로

작성일 : 2017-04-26 16:21 수정일 : 2017-10-27 15:3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강진유씨(康津兪氏)의 시조(始祖) 유적(兪 迪)은 강진(康津)에 토착(土着)한 사족(士族)으로 고려(高麗)말에 감문위 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역임하였다. 그리하여 후 손들이 조상의 정착 세거지(定着世居地)인 강진(康津)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강진(康津)은 전라남도 남서해안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의 합명(合名)인데. 도강현(道康縣)은 백제의 도무군(道武郡)으로 통일 신라 경덕왕 때 양무군(陽武軍)으로 개칭하고, 고려 시대에 도강으로 고쳐서 영암(憲岩)에 속하게 했다.

탐진현(耽津縣)은 원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인데. 통일 신라 경덕왕 때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에 예속시켰으며, 고려 시대에는 영암에 속하게 했다가 뒤에 장흥(長興)으로 이속(移屬)시켰다. 1417(태종17)에 각 병마절도사영을 도강 구치(舊 治)에 이설(移設)하고 양 현을 합쳐서 강진군을 설치하여, 탐진에 치소(治所)를 두었다. 1895년에 나주부(羅州府)의 관할 하에 들어 갔고.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시조 유적 (兪迪)의 아들 신()은 조선(朝鮮)에서 부사(府使)를 지냈고, 증손(曾孫) 의정(義貞)이 찰방(察訪)7세손 성망(聖望)이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강진유씨(康津兪氏)는 전국에 총 75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유신(兪 信):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유의정(兪義貞):조선(朝鮮)에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유의검(兪義儉):조선 때 저작(著作)을 지냈다.

유인량(兪寅亮):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유인우(兪寅佑) : 조선에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유인좌(兪寅佐) :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유침(兪 沉):조선 때 사평(司評)을 지냈다.

유성망(兪聖望) :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