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제남왕씨시조(濟南王氏),제남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6 09:52 수정일 : 2018-04-18 21:3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제남왕씨(濟南王氏)의 시조(始祖) 왕유(王 儒)는 처음에 성(姓)이 박씨(朴氏)였는데, 태봉국(泰封國) 궁예(弓裔)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궁예의 횡포가 차츰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산 속에서 은거(隱居) 하였다가, 왕 건(王 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자 등용되어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功)을 세워 태조(太祖) 왕 건(王 建)이 왕씨(王氏)로 사성(賜姓)한 것으로 전한다.

한편 또 다른 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청나라 세조(世祖)가 주문왕(周文王)의 후예인 왕씨(王氏)를 멸족(滅族)하고자 1645년(인조 23) 왕봉강(王鳳崗)이란 사람을 심양 포로소(瀋陽捕虜所)로 압송(押送)하였다. 그때 마침 심양(瀋陽)에 볼모로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그를 보고는 서로 뜻이 맞아 결의(結義)하고 함께 동래(東來)하여 이문(以文)이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하였고, 궁중(宮中)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북벌대계(北伐大計)를 논의(論議)했다. 그후 자손(子孫)에게 세록(世錄)을 하사(下賜)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로 추증하였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제남(濟南)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제남(濟南)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의 성도(省都)로서 황하의 삼각주(三角洲)와 동산(東山)과의 경계선 가까이에 위치한 지명으로 1904년 개부(開埠)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제남왕씨(濟南王氏)를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한익(韓翊)과 군수(郡守) 한정(漢禎)이 유명했으며,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도욱(道郁)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도원(道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경진(景進), 호조참판(戶曹參判) 덕구(德九) 등이 뛰어났다.

그외 중추원(中樞院)의 의관(議官)을 역임한 제만(濟萬)과 근식(瑾植)․정식(廷植)․원식(瑗植) 등이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남왕씨(濟南王氏)는 남한(南韓)에 59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제남왕씨조상인물

왕한익(王漢翊): 자(字)는 여표(汝表). 조선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왕한정(王漢禎):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왕도욱(王道郁): 자(字)는 천보(天寶). 조선 때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왕도원(王道源): 자(字)는 천수(泉首).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왕계주(王啓疇): 자(字)는 내심(乃心).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왕종호(王宗鎬): 자(字)는 근호(謹鎬). 조선에서 우후(虞侯)를 지냈다.

왕경진(王景進): 자(字)는 자익(子益). 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왕경설(王景說): 자(字)는 공모(公慕). 조선조(朝鮮朝)에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왕덕구(王德九): 자(字)는 자범(子範). 조선에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왕제응(王濟膺): 자(字)는 추수(推受). 조선 때 전환국 방판(典圜局幇辦)을 지냈다.

왕제긍(王濟肯): 자(字)는 중교(仲敎). 조선조(朝鮮朝)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하였다.

왕재열(王在說): 자(字)는 덕여(德汝). 조선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왕제만(王濟萬): 자(字)는 사선(士善). 조선 때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왕근식(王瑾植): 자(字)는 원옥(元玉). 조선조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왕정식(王廷植) 자(字)는 경유(敬有). 조선에서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왕원식(王瑗植) 자(字)는 원옥(爰玉). 조선 때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했다.

왕유식(王瑜植) 자(字)는 유옥(兪玉). 조선(朝鮮) 때 육군대장(陸軍大將)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