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봉성온씨시조(鳳城溫氏),온달(溫達),봉성온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5 20:05 수정일 : 2018-04-07 17:1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온씨(溫氏)는 중국(中國)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아우로 당(唐)에 봉해진 숙우(叔虞)의 12세손 소후(昭候)가 그의 아우 사(師)를 온(溫)에 봉하고 평원(平原)에 도읍을 정하게 하니 온씨의 성(姓)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온씨(溫氏)의 본관(本貫)은 서원(西原)․온양(溫陽)․전주(全州)․이성(伊城)․나주(羅州)․평호(平호)․금구(金溝)․거야(巨野)․경주(慶州)․진주(晋州) 등 11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일혈족(同一血族)이므로 봉성(鳳城)으로 단일화(單一化)하고 있다.

봉성온씨(鳳城溫氏)는 멀리 삼국시대(三國時代)에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구려(高句麗) 때 평강공주(平岡公主)와 혼인하여 평원왕(平原王)의 부마(駙馬)가 된 온달(溫達)로부터 온씨의 혈통(血統)이 시작되어, 신라 진덕왕(眞德王) 때 온군해(溫君解),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회양 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수(溫粹)로 이어져 왔다.

온 수(溫 粹)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선(善)은 예의판사(禮儀判事)를 지냈고, 둘째 신(信)은 우부시랑(右部侍郞)으로서 공민왕(恭愍王) 때 이존오(李存吾)․정 추(鄭 樞)와 함께 신 돈(辛 旽)의 전횡(專橫)을 탄핵하다가 왕(王)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巨野 : 금구의 옛 지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 봉성온씨 후손들은 신(信)을 일세조(一世祖)로 삼고, 관향(貫鄕)을 봉성(鳳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봉성(鳳城)은 전라북도 금구(金溝)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구지산현(仇只山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금구(金溝)로 고쳐서 전주(全州)에 속했다가 고려(高麗) 의종(毅宗) 때 금구현으로 승격하였고, 조선 때도 계속되다가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되었다. 1913년 김제군(金堤郡)에 합해져 지금은 김제군에 속한 금구면(金溝面)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인물

봉성온씨를 대표하는 인물을 살펴보면 시조 신(信)의 아들 임(琳)과 손자 윤(潤)이 좌랑(佐郞)을 지냈고, 윤의 아들 후(厚)는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여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다.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훤(喧)․순흥(舜興), 공조 참의(工曹參議) 수점(壽點), 병조 참판(兵曹參判) 정화(鼎和) 등이 유명했고, 한말(韓末)에 와서는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주택(鑄澤)과, 숭조애족(崇祖愛族)의 정신이 투철하여 사현서원(四賢書院)을 창건하고 또한 금구에 저수지를 설치한 사회사업가 성사(聖河)가 봉성 온씨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봉성온씨(鳳城溫氏)는 전국에 4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봉성온씨조상인물

온수(溫 粹): 고려(高麗)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온선(溫 善): 고려 때 예의 판사(禮議判事)를 역임하였다.

온신(溫 信): 호(號)는 수신재(守愼齋).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에 우부시랑(右部侍郞)을 지냈으며, 1366년(공민왕 15) 이존오(李存吾)․정추(鄭 樞)와 함께 신 돈(辛 旽)의 전횡(專橫)을 탄핵하다 왕(王)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당하게 되었으나 이 색(李 穡)의 도움으로 모면, 봉성(鳳城)으로 폐출(廢黜)되었다.

온임(溫 琳): 호(號)는 운림(雲林). 고려 때 좌랑(佐郞)을 지냈다.

온윤(溫 潤): 호(號)는 한수재(寒水齋). 고려 때 좌랑(佐郞)을 지냈다.

온후(溫 厚): 호(號)는 한정(閒汀). 조선(朝鮮)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온치순(溫致順): 조선 때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이되었다.

온치우(溫致遇):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를 지냈다.

온효진(溫孝珍): 초명(初名)은 수진(守鎭). 1547년(명종 2) 정미사화(丁未士禍) 때 요동(遼東)으로 피신(避身), 13년만에 북청(北靑)으로 돌아와 세거(世居)하였으므로 청주파(淸州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온기남(溫基南): 조선(朝鮮) 때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다.

온몽상(溫夢祥): 자(字)는 자징(子徵).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온정경(溫鼎卿): 조선 때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다.

온훤(溫 暄): 조선에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온득하(溫得夏): 조선(朝鮮)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온순흥(溫舜興): 자(字)는 덕경(德卿). 조선 때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온수점(溫壽點):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온이재(溫以載):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온승민(溫升民): 자(字)는 고정(高政). 조선조에 품계(品階)가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온정화(溫鼎和): 조선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온경서(溫景瑞): 자(字)는 경지(慶之). 조선(朝鮮)시대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온경옥(溫擎玉): 자(字)는 성오(成五). 조선 때 의금부 사(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온병구(溫炳耈): 자(字)는 장호(章皓).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온사직(溫士直): 조선조(朝鮮朝)에 군자감(軍資監) 정(正)을 지냈다.

온명오(溫命五): 조선(朝鮮) 때 의정부(議政府) 참정(參政)을 역임하였다.

온덕배(溫德培):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온광규(溫光奎): 자(字)는 내의(乃儀). 조선(朝鮮)에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온일범(溫日範): 조선 때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온쾌종(溫快宗): 조선조(朝鮮朝)에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온덕기(溫德基):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온처곤(溫處坤): 조선(朝鮮) 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지냈다.

온면종(溫冕鍾): 조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라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온기섭(溫箕燮): 조선(朝鮮)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온응팔(溫應八):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온석유(溫錫有): 조선조(朝鮮朝)에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온주택(溫鑄澤): 조선(朝鮮) 때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온성하(溫聖河): 자(字)는 천일(千一), 호(號)는 청재(淸齋). 숭조애족(崇祖愛族)의 정신이 투철하여 사현서원(四賢書院)을 창건하여 조상(祖上)을 숭봉(崇奉)케 하였고, 또한 금구(金溝)에 수리시설(水利施設)이 없고 가뭄의 피해가 많으므로 금구 저수지(金溝貯水池)를 설치(設置)하였다. 몽이민(夢利民)들이 그의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