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화순오씨시조(和順吳氏),오원(吳元),화순오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4 17:06 수정일 : 2018-03-21 21:42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화순오씨(和順吳氏)는 현필(賢弼 : 보성 오씨 시조)의 셋째 아들 오원(吳元)을 시조(始祖)로 하여 화순(和順)에 세거(世居)하면서 보성 오씨(寶城吳氏)에서 분적(分籍), 본관(本貫)을 화순(和順)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화순(和順)은 전라남도(全羅南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백제(百濟) 잉리아현(仍利阿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여미(汝湄)로 고치고 능성군(綾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 초에 화순(和順)으로 고쳐 나주(羅州)에 속(屬)했다가 후에 능성(綾城)에 편입시켰고 공양왕 때 다시 설치하였다. 1394년(태조 3)에 2현으로 나누어서 동복(同福)을 설치하여 겸임시켰고, 1405년(태종 5) 2현을 합하였으며 1407년(태종 7) 복순(福順)이라 고쳐서 칭하였다. 1416년(태종 16) 다시 동복(同福)을 설치하고 화순현을 능성(綾城)에 편입시켰으며, 순성(順城)이라 칭하다가 1418년(태종 18)에 각각 복구하였다. 1594년(선조 27) 능성에 편입시켰고 1611년(광해군 3) 다시 화순현을 설치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능주․동복의 양군을 합하였고 1963년 화순면이 화순읍으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화순오씨 시조 오원(吳元)의 7세손 순공(順公)이 고려(高麗)에서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거쳐 동정(同正)을 지냈고, 조선(朝鮮)에서는 상린(尙麟)이 영조(英祖) 때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등과(登科)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사충(思忠)이 1404년(태종 4) 삼맹훈신(三盟勳臣)으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라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져서 크게 명망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화순오씨(和順吳氏)는 전국에 3,95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화순오씨조상인물

오순공(吳順公): 고려(高麗) 때 전중내급사(殿中 內給事)를 거쳐 동정(同正)을 지냈다.

오사충(吳思忠): 1327(충렬왕 14)~1406(태종 6). 초명(初名)은 사정(思正), 시호(諡號)는 공희(恭僖), 순공(順公)의 아들. 1355년(공민왕 4) 문과(文科)에 급제, 감찰(監察)․규정(糾正)․헌납(獻納)․집의(執義)를 지내고 1389년(창왕 1) 사의대부(司儀大夫)에 올라 대사성(大司成)․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있을 때 사헌부(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아 유배(流配)되었으나 곧 풀려나 좌상시(左常寺)에 복직되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호조 전서(戶曹典書)가 되고 개국3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녹훈, 영성군(寧城君)에 봉(封)하여졌다. 1594년(태조3)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이듬해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에 올라 정당문학(政堂文學)․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에 이르렀다.

오상린(吳尙麟): 1743년(영조 1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