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함평오씨시조(咸平吳氏),오잠(吳岑),함평오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4 17:00 수정일 : 2018-04-04 21:5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함평오씨(咸平吳氏)의 시조(始祖) 오잠(吳岑)은 현보(賢輔)의 넷째 아들로 고려(高麗) 원종(元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全羅南道) 서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2현(縣)의 합명(合名)이다. 함풍현(咸豊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굴내현(屈乃縣)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함풍현으로 고쳤고, 모평현(牟平縣)은 다지현(多只縣)을 다기현(多岐縣)으로 개칭하고 무안군(務安郡)에 이속되었다가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모평현(牟平縣)으로 하였다. 그후 1409년(태종 9) 함풍현과 모평현을 병합하여 함평(咸平)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함평오씨를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오잠(吳 岑)의 아들 진후(進厚)가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손자 사총(思摠)은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로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고 사총의 아들 공요(公孝)는 군기감 직장(軍器監直長)을 역임하여 훌륭한 가문(家門)을 빛냈다.

이외에도 주부(主簿)를 지낸 손계(孫啓)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서(瑞), 그리고 효행(孝行)이 뛰어났던 영(齡) 등이 유명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평오씨(咸平吳氏)는 남한(南韓)에 3,16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함평오씨조상인물

오진후(吳進厚)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정순대부(正順大夫)로 호조 전서(戶曹典書)를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오사총(吳思摠)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뒤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로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으며 모평군(牟平君)에봉해졌다.

오공효(吳公孝) 고려(高麗) 때 군기감 직장(軍器監直長)을 지냈다.

오손계(吳孫啓) 고려조(高麗朝)에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오적(吳 迪) 고려 때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오헌(吳 憲) 호(號)는 송암(松庵). 고려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오인(吳 璘) 자(字)는 군옥(君玉), 호(號)는 낙당(樂堂). 조선조(朝鮮朝)에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였다.

오서(吳 瑞) 자(字)는 영백(英伯), 호(號)는 자락헌(自樂軒). 조선(朝鮮)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오령(吳 齡) 자(字)는 달존(達尊). 조선 중종(中宗) 때 생원(生員)이 되었고 목청전 참봉(穆淸殿參奉)을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旌門)이 명(命)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