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전주오씨시조(全州吳氏),오준민(吳俊玟),전주오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4 14:19 수정일 : 2018-04-18 12:4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전주오씨(全州吳氏)의 시조(始祖) 오준민(吳俊玟)은 고려(高麗)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완산(完山 : 전주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전주(全州)는 전라북도(全羅北道) 중앙(中央)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리우다가 555년(신라 진흥왕 16)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그후 경덕왕(景德王 : 제 35 대왕, 재위기간 : 742~765)이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견훤(甄萱)이 후백제(後百濟)를 세워 40여 년 간 이 곳을 도읍으로 하였으나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한 때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하다가 공민왕(恭愍王)이 완산부(完山府)로 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선조(先祖)의 고향(故鄕)이라 하여 완산 유수부(完山留守府)로 개칭하였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全州府)가 되었으며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전주시(全州市)로 개편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始祖) 오준민의 손자 현복(玄福)이 고려(高麗)에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냈으며, 증손 순일(筍逸)이 평리사사(評理司事)․상서령(尙書令)을, 5세손 흠순(欽淳)이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순무사(巡撫使)를 지냈다.

또한 흠순의 손자 긍은(肯殷)이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능성백(綾城伯)에 봉해졌으며, 긍은의 아들 무광(武礦)이 상장군(上將軍)을, 무광의 아들 희현(希鉉)이 고려(高麗) 말에 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조선조(朝鮮朝)에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좌찬성(左贊成)과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는 등 대(代)를 이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朝鮮)에 들어와서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홍균(弘鈞),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오른 홍엽(弘燁), 호조(戶曹) 참판(參判)에 이른 윤수(胤秀)와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낸 홍철(弘鐵) 그리고 효자(孝子)로서 이름난 태은(泰殷) 등이 있다.


인 구

2000년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주오씨(全州吳氏)는 전국에 총 427가구, 1,45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전주오씨조상인물

오긍락(吳兢樂): 고려(高麗) 때 교감(校勘)을 지냈다.

오정락(吳正樂): 고려 때 지주사(知州事)를 지냈다.

오현복(吳玄福): 고려조(高麗朝)에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오순일(吳筍逸): 고려에서 상서령(尙書令)을 지냈다.

오흠순(吳欽淳): 고려(高麗) 때 순무사(巡撫使)를 역임하였다.

오성진(吳成鎭): 고려에서 위호군(衛護軍)을 지냈다.

오긍은(吳肯殷): 고려조(高麗朝)에 안찰사(按察使)를 역임하였다.

오무광(吳武礦): 고려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오희현(吳希鉉):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조선(朝鮮) 때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오진견(吳進堅):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오홍균(吳弘鈞): 시호(諡號)는 충문(忠文). 조선(朝鮮) 때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오홍엽(吳弘燁): 조선조(朝鮮朝)에 예조(禮曹)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오윤수(吳胤秀): 조선 때 호조(戶曹) 참판(參判)을 지냈다.

오항기(吳恒基):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오관영(吳寬泳): 조선(朝鮮)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오학연(吳鶴淵):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오귀팔(吳龜八):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오철수(吳喆秀):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오홍철(吳弘鐵): 조선 때 호조(戶曹)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오근휘(吳近暉):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오용수(吳龍守): 조선(朝鮮) 때 사복시(司僕寺) 정(正)을 지냈다.

오근육(吳近六): 조선에서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오태은(吳泰殷): 자(字)는 치흥(穉興), 호(號)는 남은(南隱). 조선(朝鮮)때 효자(孝子)로 향민(鄕民)의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