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광산승씨시조(光山承氏),승개(承愷),광산승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21 14:05 수정일 : 2018-04-19 11:3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광산(光山)은 전라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인데 757년(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고쳤다. 진성여왕(眞聖 女王 : 제51대 왕, 재위기간 : 887 ~ 897) 때는 견훤이 이곳에 후백제(後百濟)를 세워 도읍을 정하기도 하였으나, 940년(고려 태조 23) 태조(太祖)가 신 검(神 劍)을 토멸(討滅)하고 군현(郡縣)을 정비할 때 처음으로 광주(光州)라 칭하였다.

성종(成宗) 때 해양현(海陽縣)으로 불리우다가 1259년(고종 46) 기주(冀州 : 일명 기양주)라 고쳤으며, 충선왕(忠宣王) 때 이르러 화평부(化平府)로 강등되어 공민왕(恭愍王) 때 광주목(光州牧)이 되었다. 조선(朝鮮) 성종조(成宗朝)에는 현(縣)으로 강등되어 광산(光山)이라 칭하다가 연산군(燕山君) 때 다시 주(州)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나주부(羅州府) 관할의 광주군이 되었다가 1935년 광주가 부로 승격됨에 따라 광산군(光山郡)이 되었다.

광산승씨(光山承氏)는「여지승람(輿地勝覽)」에 광주(光州)의 토성(土姓)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조(始祖)는 고려 정종(靖宗)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한 승개(承愷)로 전한다.

그러나 연일 승씨(延日承氏)에서도 승개를 시조로 받들고 있어 동원(同源)으로 추정되는데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어 정확하게 상고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인물 

「광산승씨족보(光山承氏族譜)」에 의하면 시조 개(愷)의 아들 성구(聖耈)와 손자 명복(命福)이 고려조에서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고 하며, 8세손 교(敎 : 상명의 아들)는 1427년(세종 9)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정언(正言)을 거쳐 봉렬대부(奉列大夫)로 남평 현감(南平縣監)을 역임하여 주부(主簿)를 지낸 봉선(奉先)․명수(명秀)와 함께 가세를 일으켰고, 설(渫)은 광해군 때선무랑(宣務郞)으로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경종(景宗)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정조(鼎祚)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지냈으며, 진복(進福)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용양위 호군(龍驤衛護軍)을 역임하여 광산 승씨의 가통(家統)을 지켰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산승씨(光山承氏)는 남한(南漢)에 47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광산승씨조상인물

승성구(承聖耈) 고려조에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승명복(承命福) 시호는 장성(掌成). 고려조에 정난익대명량좌리공신(定難翊戴明亮佐理功臣)에 녹훈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로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에 올랐다.

승우(承 祐) 고려조에 보승중랑장(保勝中郞將)으 역임하였다.

승유인(承由仁) 조선(朝鮮)에 신호위 보승랑장(神虎衛保勝郞將)을 역임하였다.

승안도(承安道) 조선 세종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임치 도만호(臨淄都萬戶)를 지냈다.

승교(承 敎) 1427년(세종 9)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정언(正言)을 거쳐 봉렬대부(奉列大夫)에 올라 남평 현감(南平縣監)을 역임하였다.

승문(承 文) 현감(縣監) 교(敎)의 아들. 조선조(朝鮮朝)에 충순위(忠順衛)에 올랐다.

승언륜(承彦綸) 자는 윤언(允言). 조선 명종 때 성균과 진사를 지냈다.

승묵(承 黙) 조선조에 장사랑(將仕郞)으로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을 지냈다.

승봉선(承奉先)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승대훈(承大勳) 조선조에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을 지냈다.

승명수(承蓂秀) 1593년(선조 20) 전주별시(全州別試)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합격,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승운수(承芸秀)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승계수(承桂秀)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승설(承 渫) 자(字)는 원계(源계). 1620년(광해군 12) 선무랑(宣務郞)으로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역임하였다.

승시량(承時亮) 자(字)는 한연(漢衍).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승정조(承鼎祚) 자(字)는 여적(汝迪). 조선 경종조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 진사(進士)가 되고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에 이르렀다.

승진복(承進福) 자(字)는 덕진(德進), 호(號)는 노송(老松). 조선조에 수직(壽職)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