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주송씨시조(淸州宋氏)송춘(宋椿),송빈(宋賓)

작성일 : 2017-04-20 14:41 수정일 : 2018-03-04 11:51

시 조

청주송씨의 시조 송춘(宋 椿)은 고려 말기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그의 아들 유충(有 忠)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워 개국삼등공신(開國二等功臣)으로 청원군(淸原君) 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으나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조선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칠원 현감(漆原縣監)으로 나갔다가 가족을 데리고 김해의 하계면 대종리에 청작세거한 승은(承殷)을 일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본관의 유래

청주(淸州)는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는 도청소재지로서 원래 마한의 땅이었는데 백제가 상당현이라 하였고, 일명 낭비성 또는 낭자곡으로 불리우다가 685년(신라 신문왕 5) 서원소경을 두었으며, 757 년(경덕왕 16)에 서원경으로 승격 되었다. 고려조에 와서 청주로 고치고 그 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한 후 1895년(고종 32) 청주군이 되었으며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성종 때 훈련원 참군(訓鍊院參軍)을 지내고 높은 덕망과 학행으로 명망이 높았던 숙형(淑亨)이 ‘‘김해부 오원“ 중의 한 사람으로 김일손(金助孫)과 함께 김해향약(金海鄕約)을 제정하였으며, 그의 아들 유호(有浩)는 성종 때 계공랑(啓功郞)으로 강서훈도(江西訓導) 를 역임하여 고성만호(固城萬戶)와 절제사(節制使)를 지낸 아들 경(經)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경의 손자 밀(密: 통정대부 창의 아들)은 선무랑(宣務郞)으로 예빈시(禮賓寺) 주부(主簿)를 역임했고, 그의 아우 송빈(宋賓)은 임진왜란 때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창의하여 죽도에서 적을 대파하고 진주성 전투에서 김득기(金得器) · 이대형(李 大亨) · 류식(柳 湜) 등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여 공조 참의 (工曹參議)에 추증되고 뒤에 이조참판에 가증되었으며 , 그의 아들 정백(廷伯)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곽재우(郭 再祐)의 막하에서 많은 적을 진압하여 용맹을 떨쳤다.

그의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민영(敏英: 예빈시 주부 민의 아들)과 통정대부(通政大夫) 정영(廷英)의 형제가 유명했고, 정백의 아들 제룡(齊龍)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사과(龍驛[衛副司果)를 역임하여 침지중추부사를 지낸 세무(世武 민영의 증손), 통정대부(通政大夫) 재식(在試),시학자(詩學者) 정학(鼎學) 등과 함께 청주송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송씨는 남한에 8,17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