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야성송씨시조(冶城宋氏),송맹영(宋孟英),본관의유래

작성일 : 2017-04-18 22:21 수정일 : 2019-05-24 16:28

시 조

야성송씨시조(冶城宋氏 始祖) 송맹영(宋孟英)은 고려(高麗) 목종(穆宗)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陳議大夫)와 총부의랑(德部議郞)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야성(冶城)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4세에 이르러 직장공파(直長公派) ·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 ·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 현령공파(縣令公 派) · 선전공파(宣傳公派) 등 크게 다섯 파로 갈라졌다.


본관의 유래

야성(冶城)은 야로(冶爐)의 별호인데, 야로는 경상남도(慶尙南道) 합천군(陝川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때 적화현(赤火縣)이었던 것을 경덕왕(景德王)이 야로(冶爐)로 고쳐서 고령군(高靈郡)의 영현(領限縣)으로 삼았다가 1018년(현종 9)에 합천(陝川)에 합해졌다. 지금의 합천군 야로면 구정동(陝川郡 治t盧面 九汀洞) 부근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송씨문헌록(韓國宋氏文獻錄)」에 의하면 시조로부터 9세손까지 분묘(墳墓)가 실전(失傳)되어 1974년 유지(遺址)로 전해진 합천군 야로면 구정동에 9세까지의 제청(祭廳)과 망묘비(望墓碑)를 세워 ‘‘구정재(九政齋)” 라 이름하고 매년 한식(寒食)에 세제(歲祭)를 지낸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 맹영의 아들 창(昌)이 고려조에서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냈고, 손자 우(靖)는 문림랑(文林郞)으로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역임하여 상서호부(尙書戶部)에 오른 아들 인서와 함께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한편 대광보국(大匡輔國)으로 평장사(平章事)에 오른 기(綺)의 아들 구(構)는 경기감사(京畿監司)를 비롯한 주요 관직을 역임하고 어사(御史)가 되어 영남(嶺南)지방의 시정을 안무했으며, 구의 아들 길창(吉昌)은 개성윤(開城尹)을 지내고 야성군(治城君)에 습봉되어 크게 명성을 떨쳤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했던 희규(希奎)는 부사직(副司直) 방현(邦賢: 길창의 현손)의 아들로 홍 해 군수(興海郡守)와 장령(掌令) · 상주 목사(尙州牧使) 등 을 지내고 명종(明宗) 때 예빈시정(禮賓寺正)이 되어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대구부사(大丘府使)를 지냈다.

그 후 장령이 되어 왕(王)의 외숙(外叔)으로 전횡을 일삼던 윤원형(尹元衡)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고산현(高山縣)에서 5년 간 귀양살이를 했다.

한강(寒岡) 정구(鄭述)의 문하(門下)에서 학문(學問)을 연마했던 광정(光廷: 유경의 아들)은 선조(宣祖) 때 등과하여 정랑(正郞)을 역임했다. 그의 아우 광계(光啓)가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거쳐 호조 정랑(戶曹正郞) 겸 춘추관(春秋館) 기주관(記注官)을 지내고 종부시정(宗薄寺正)에 이르러 군수(郡守) 광심(光心), 지평(持平), 광정(光井)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며, 경종(景宗) 때 문과 에 급제했던 이서(履瑞)는 통덕랑(通德郞) 익도(翼道)의 아들로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후갑(后甲)의 아들 유식(儒式)은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한말(韓末)에 와서는 천흠(天欽: 인각의 아들)이 용양위부호군과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낼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관민(官民)의 칭송을 받았으며, 상도(相燾)는 30여년간 애국지사들의 행적과 사료(史料)를 모아 「기로수필 (騎鳴隨筆)」을 저술하여 오늘날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심권(心權)의 아들 천흠(于欽)은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무력으로 강행되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애국동지를 규합하여 광복운동에 앞장섰으며, 벽조(碧照)의 아들 추(樞)는 유일학림(唯一學林)을 설립하고'. 인재양성에 진력하여 의절(義節)의 가문인 야성송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야성송씨(一學林)을 설립하고'. 인재양성에 진력하여 의절(義節)의 가문인 야성송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야성송씨(冶城宋氏)는 남한(南韓)에 총 2,554가구, 10,60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는 20,02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