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문경송씨시조(聞慶宋氏),송신경(宋臣敬)

작성일 : 2017-04-18 21:19 수정일 : 2018-04-04 21:2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문경송씨(聞慶宋氏)의 시조(始祖) 송신경 (宋臣敬)은 누대 (累代)에 걸쳐 문경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해 온 사족(士族)의 후예(後裔)로 고려 말엽에 공조(工曹) 및 이부(吏部)의 전서(典書)를 지내고 혼탁한 정국(政局)올 수습하려 했으나 간악한 무리들의 전횡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를 개탄하 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문경에서 여생올 보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신경 (臣敬)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문경(聞慶)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시조의 현손(玄孫) 익희(益禧: 장사랑)의 아들 6 형제 중 맏아들인 진사(進士) 홍(弘)을 파조(派祖)로 하는 진사공파(進士公派)와 막내 발(發: 장사랑으로 기자전 참봉을 역임)을 파조로 하는 참봉공파(參奉公派)로 갈라져서 문경송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문경(聞慶)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신라시대(新羅時代) 이전에는 고사갈이(高思 葛伊)라 하였으며, 신라 초기에 관문현(冠文縣)이라 하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관산현(冠山縣)으로 고쳤다. 고려(高麗) 초기에 문희 (聞喜)라 하고 현종(顯宗) 때 상주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聞慶)으로 고쳤으며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문경현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세(家勢)를 일으킨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시조 신경 (臣敬)의 아들 연(璉)이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병부전서(兵部典書)에 올랐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 청양 현감(靑陽縣監)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고 청렴결백하게 정사(政事)를 처리하여 주민들에 의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고, 그의 아들 수중(守中)은 세종(世宗)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 겸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에 올랐다.

1480년(성종 11) 김굉필(金宏弼) · 안당(安塘) · 송흠(宋 欽) · 류순정(柳 順汀)등과 동방(同榜)으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했던 함(誠:승문원사 수종의 아들)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지냈으나 연산군(燕山君)이 즉위 하여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자녀교육에 힘쓰는 한편, 향유(鄕儒)들과 시문(詩文)으로 소일하다가 박원종(朴元宗) · 류순정 (柳順汀) · 성희안(成希顔)등과 더불어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정국 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곤과 아들 정렴(廷濂 : 주부 · 중추부사를 역임) · 정수(廷凍. 군자감정) 3부자는 임진왜란 때 용만(龍灣)으로 파천하는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고 의곡(義穀)을 모아 행재소(行在所)로 보내니 왕이 그의 층의(忠義)를 가상히 여겨 벼슬을 내려 치하했다. 그 외 통정대부(通政大夫) 언관(彦寬)의 아들 의가봉직랑(奉直郞)으로 사재감 침정(司宰監余正)을 지냈으며, 손자 정빙(廷聘)은 군자감 판관(軍資監判官)을 역임하여 평구찰방(平丘察訪)을 지낸 준(晙)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곤의 6세손 익채(益彩 : 사도의 아들)는 영조(英祖)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대정(大靜: 제주) 현감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서 주민들이 그의 덕치(德治)를 노래 불렀다고 하며, 철환(喆煥)의 아들 기협(基協)과 중현(重鉉)의 아들 일수(一洙)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驛衛副護軍)을 역임하여 효성(孝誠)으로 명망이 높았던 근홍(根洪: 내수의 아들) 과 함께 문경송씨의 가통(家統)을 세웠다.


인 구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문경송씨(聞慶宋氏)는 남한(南韓)에 총 1,217가구, 5,45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3,25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