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김해송씨시조(金海宋氏),송천봉(宋天逢)

작성일 : 2017-04-18 18:45 수정일 : 2018-04-12 11:4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김해송씨(金海宋氏)의 시조(始祖) 송천봉(宋天逢)은 1330년(충숙왕 17)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정언(正言)․헌납(獻納)․기거랑(起居郞) 등을 지냈으며 충목왕조(忠穆王朝)에 감찰(監察)을 거쳐 장령(掌令)이 되어 당시 평리(評理)로 전횡을 일삼던 김윤장(金允藏)을 탄핵하다가 윤장의 참소로 오히려 초도(草島)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대관(臺官)에 임명되었으나 불취하자 신맹(辛孟: 정당문학)과 이공수(李公遂: 판밀직사사)의 역청(力請)으로 광양 감무(光陽監務)를 거쳐 공민왕 (恭愍王) 초에 감찰 집의(監察執義)를 지냈으며, 우왕(禑王) 때는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환자(宦者) 윤충좌(尹忠佐)의 죄를 논책했고, 벼슬이 첨서밀직사사(僉書密直司事)에 이르러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졌다.

김해(金海)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대국가(古代國家)인 6가야(伽倻) 중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중심지였으나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新羅)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 또는 금관소경(金官小京)이라 하였고, 680년(문무왕 20)에 김해(金海)로 개칭하여 소경(小京)을 두었다.

고려(高麗) 때에는 김해부(金海府)․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의 일부가 되었다가 부민(府民)의 반란으로 1276년(충렬왕 2)에 현(縣), 그 후 금주목(金州牧)․김해부․김해도후부가 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고쳤다가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군(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김해(金海)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천봉의 손자 자교(子郊)의 아들 이름이 실전(失傳)되어 조선 세종(世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의(兵曹參議)와 경상도순찰사(慶尙道巡察使)를 지낸 길정(吉貞: 자교의 손자)을 중흥조(中興祖)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그 후 길정(吉貞)의 맏아들 중문(仲文)이 1451년(문종 1) 무과에 급제하여 개령(開寧)과 사천 현감(泗川顯監)을 지내고 경흥(慶興)과 동래 부사(東萊府使)를 6년간 역임했으며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워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지내며 많은 덕행(德行)을 베풀어 크게 명성을 떨쳐 가세(家勢)를 일으켰으며, 그의 아우 인문(仁文)이 승의교위(承義校尉)로 좌군부사직(左軍副司直)을 거쳐 목사를 역임하였다. 한편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득시(得時: 길정 의 아우)의 아들 포(褒)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깊이 닦았고 재기(才氣)가 뛰어났으며 효성(孝誠)이 극진했다.

음직(蔭職)으로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역임했으나 슬하에 아들이 없어 외손들이 봉사(奉祀)하여 왔다. 그의 아우 한(漢)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현감(縣監)으로 나가 청렴결백한 관리로 칭송을 받았고 많은 치적(治績)을 남겼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첨지중추부사 중문(仲文)의 아들 희명(熙明)이 성종(成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진주 병마절도사(晋州兵馬節度使)로 나갔다가 연산군(燕山君)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학문 연구에 진력하여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공릉 참봉(恭陵參奉) 광규(光奎)의 아들 관(綰)은 선조(宣祖)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만년에 낙향하여 후학(後學)을 양성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외 용양위부호군(龍 衛副護軍) 덕립(德立)의 손자 규상(奎祥)이 효행(孝行)과 학덕(學德)으로 명망이 높았고 자질(子姪) 교육에 법도(法度)가 있어 세인들이 존망을 받았으며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상문(尙文: 창지의 아들)․ 지한(之瀚: 증예조 참판 용복의 차남), 감찰을 역임한 태용(泰用: 경릉 참봉 수천의 아들) 등과 함께 김해송씨를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남한에 1,14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