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남양서씨시조(南陽徐氏),서간(徐趕),남양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7 16:58 수정일 : 2018-04-08 14:3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남양서씨(南陽徐氏)의 시조(始祖) 서간(徐趕)은 중국에서 귀화(歸化)해온 8학사의 한사람으로 당성(唐城 : 남양의 별호)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르러 남양군(南陽郡)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 후(厚)가 고려 현종(顯宗 : 제8대 왕, 재위기간 : 1009~1031) 때 대장군(大將軍)으로 거란(契丹)의 침입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당성군(唐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간(趕)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남양(南陽)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水原)과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의 당성군(唐城郡)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이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다가 고려(高麗) 초에 다시 당성(唐城)을 고쳤고, 1018년(현종 9) 수주(水州 : 수원)와 인주(仁州 : 인천)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1310년(충선왕 2)애 남양부(南陽府)가 되었다.

조선조(朝鮮朝) 말기에 남양군(南陽郡)이 되어 인천부(仁川府) 관할이 되었다가 1913년 군을 폐하고 그 땅을 나누어 영흥면, 대부면은 부평군(富平郡)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水原郡)에 합하였다. 그후 수원면이 수원읍(水原邑)으로 승격되었으며, 후에 수원읍 이외의 땅은 화성군(華城郡)으로 수원읍은 수원시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4세손 눌(訥)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을, 그의 아들 존(存)은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찬(贊 : 시조의 8세손)의 아들 희팔(希八 : 부제학을 역임)과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거쳐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른 적(迪)의 부자(父子)가 유명했다.

한편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내고 우승지(右承旨)에 오른 숙(淑)의 맏아들 충수(忠守)는 도승지(都承旨)을 역임했으며, 부위(副尉) 혼(混)의 아들 충필(忠弼)이 부호군(副護軍)에 올라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아우 충우(忠佑)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1625년(인조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정연(挺然 : 참판 충우의 아들)은 사정(司正)과 호조 참의(戶曹參議)을 지내고 천안(天安)의 육현사(六賢祠)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참찬관(參贊官) 정지(挺之)의 아들 한주(漢柱)가 학행(學行)으로 유명했다.

그는 일찍이 성리학(性理學)의 거두(巨頭)인 존재(存齋) 조 익(趙 翼)에게 글을 배우고 신독재(愼獨齋) 김 집(金 集)의 문하(門下)에서 예학(禮學)을 연마하여 문장(文章)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효종(孝宗) 때 학행(學行)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천거되어 현종(顯宗) 때 주부(主簿)와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지내고 지방의 수령(守令)으로 나가 치적(治績)을 쌓아 부사(府使)에 올랐다.

그외 절제사(節制使) 몽량(夢良 : 한주의 아들)과 부사(府使) 필경(必慶 : 참판 정시의 증손)이 유명했으며, 명로(命老)의 아들 성경(性慶)은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여 오위장(五衛將) 종렬(鍾烈)과 함께 남양서씨의 가통(家統)을 지켰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양서씨(南陽徐氏)은 남한(南韓)에 1,72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남양서씨조상인물

서후(徐 厚) 고려 현종조(顯宗朝)에 좌정승(左政丞)을 지내고 대장군(大將軍)으로서 거란(契丹)의 침입을 토평한 공(功)으로 당성군(唐城君)에 봉해졌다.

서눌(徐 訥)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을 역임했다.

서균(徐 均) 조선(朝鮮) 때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냈다.

서원길(徐元吉) 조선 때 교리(校理)를 지냈다.

서득귀(徐得貴) 조선조(朝鮮朝)에 사재판사(司宰判事)를 역임하였다.

서준지(徐俊智)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서효우(徐效虞) 자(字)는 효수(孝叟). 조선 때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서응기(徐應起) 자(字)는 경효(敬孝). 조선에서 참봉(參奉)을 지냈다.

서응건(徐應健) 조선(朝鮮)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서숙(徐 淑) 자(字)는 자선(子善).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서충수(徐忠守) 자(字)는 성지(成之). 조선조(朝鮮朝)에 도승지(都承旨)을 역임하였다.

서충필(徐忠弼)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서정시(徐挺時) 자(字)는 이습(而習). 조선에서 교관(敎官)을 지냈다.

서정영(徐挺英) 자(字)는 군실(君實). 조선(朝鮮)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서정현(徐挺賢) 자(字)는 여창(汝昌). 조선조에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하였다.

서정연(徐挺然) 자(字)는 관수(寬秀), 호(號)는 사봉(沙峯). 1625년(인조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정(司正)을 거쳐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냈으며, 천안(天安)의 육현사(六賢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서한종(徐漢宗) 자(字)는 여장(汝章). 조선 때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서한주(徐漢柱) 1622 (광해군 14) ~ 1689 (숙종 15)

자(字)는 군석(君石), 호(號)는 복재(復齋), 정지(挺之)의 아들. 16세 때 조 익(趙 翼)의 문하에서 배우고 이어 김 집(金 集)에게서 학문을 연마, 문장으로 송시열(宋時熱), 송준길(宋濬吉)의 격찬을 받았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문학, 효행으로 천거되어 1653년(효종 4)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고, 1662년(현종 3) 사도시주부(司䆃시主簿)에 승진,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거쳐 여러 주군의 수령으로 치적(治績)이 있었으며, 부사(府使)에 올랐다.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 천안(天安)의 육현사(六賢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서몽량(徐夢良) 자(字)는 영년(永年), 호(號)는 송남(松南). 조선조(朝鮮朝)에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서필경(徐必慶) 자(字)는 선격(善格). 조선조에 부사(府使)을 지냈다.

서성경(徐性慶) 자(字)는 사희(士喜). 조선조(朝鮮朝)에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서종렬(徐鍾烈) 자(字)는 자형(子亨).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