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효령사공씨시조(孝令司空氏),사공도(司空圖),효령사공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7 16:23 수정일 : 2018-04-05 15: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사공씨(司空氏)는 중국(中國) 돈구(頓丘 : 직예성 대명도 청풍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진(晋)나라 때 가신(賈辛)이란 사람이 사공(司空)의 벼슬을 지내고 왕으로부터 벼슬 이름을 성(姓)으로 하사(下賜)받은 것이 시초가 된다.

우리나라 사공씨의 연원(淵源)은 당(唐)나라 희종(僖宗) 때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낸 사공도(司空圖)가 897년(신라 효공왕 원년) 8학사의 한사람으로 동래(東來)하여 동방의 거유(巨儒)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과 교유하며 당문화(唐文化) 보급에 앞장섰고, 그후 귀화하여 사공씨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의 계대(系代)가 불명(不明)하고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전하지 않아 고려 충숙왕(忠肅王 : 제27대 왕, 재위기간 : 1313~1370, 복위 : 1332~ 1339)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의시사(判儀시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효령군(孝令君)에 봉해진 사공중상(司空仲常)을 중조(中祖)로 받들고 봉군지명인 효령(孝令)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효령(孝令)은 경상북도(慶尙北道) 군위군(軍威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모혜현(芼兮縣)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효령(孝靈)으로 고쳐 숭선군(崇善郡 : 선산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高麗) 현종(顯宗) 때 상주(尙州)에 속하였다가 1143년(인종 21) 일선군(一善郡 : 선산)에 환속하였으며, 공민왕조(恭愍王朝)에 군위(軍威)에 합해져 지금은 군위군에 속한 효령면(孝令面)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그후 중상(仲常)의 아들 실(實)이 1353년(공민왕 2) 이 색(李 穡)․박상충(朴尙衷)․정 추(鄭 樞) 등과 함께 진사시(進士試)에 올라 광흥창사(廣興倉使)와 대호군(大護軍)을 지내고 한림박사(翰林博士)로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을 떨쳐「동방명현록(東方名賢錄)」에 수록되었으며, 그의 아들 민(敏)은 공민왕 (恭愍王)과 창왕대(昌王代)에 걸쳐 사복시정(司僕시正)과 삼사 부윤(三司府尹)을 지내고 숭록대부(崇祿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國運)이 기울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절의(節義)를 지켰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개성 유수(開城留守) 달(達 : 민의 아들)의 아들 주(周)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성균관사(成均館事)에 올랐으나 세조(世祖)이 왕위찬탈의 음모를 꾸미자 낙향하여 세조가 있는 북쪽을 향해 앉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편 경어재(耕漁齋) 주(周)의 아들 발(發)은 문종(文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으나 강직(剛直)한 성품으로 직간(直諫)을 하다가 미움을 받자 벼슬을 버리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진력했으며,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어 이들이 종파(宗派)․중파(仲派)․계파(季派)로 갈라져 가문의 중추(中樞)를 이루었다.

성종(成宗)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개성부 직장(開城府直長)을 지낸 맏아들 비(棐)의 후손에서는 효성(孝誠)과 학문(學問)으로 명망이 높았던 정(精 : 비의 아들)과 선조(宣祖) 때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지낸 회(誨 : 정의 손자),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선(銑), 평구도 찰방(平丘道察訪)의 용(鎔) 3부자가 유명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 습(習)의 아들로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지낸 양(亮)과 홍문관 부응교(弘文館副應敎)을 역임한 기(琦)의 형 제가 뛰어났고, 찰방 용(鎔)의 손자 지(祉)는 숙종(肅宗) 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우(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균(均), 순조(純祖) 때의 병마절제사(兵馬切除使) 현(鉉), 장악원정(掌樂院正) 억(檍) 등과 함께 효령 사공씨의 가문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효령사공씨(孝令司空氏) 남한(南韓)에 2,7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효령사공씨조상인물

사공실(司空 實) 자(字)는 백허(伯虛), 호(號)는 자하(紫霞). 1353년(공민왕 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선덕랑(宣德郞)으로 광흥창사(廣興倉使)를 거쳐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사공민(司空 愍)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봉렬대부(奉烈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고 소윤(少尹)을 거쳐 가정대부(嘉靖大夫)로삼사 부윤(三司府尹)을 역임한 후 숭록대부(崇錄大夫)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사공달(司空 達) 조선조(朝鮮朝)에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역임하였다.

사공주(司空 周) 자(字)는 도문(度文), 호(號)는 경어재(耕漁齋).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성균관사(成均館事)를 역임하였다.

사공발(司空 發) 자(字)는 영숙(英叔), 호(號)는 교은(喬隱). 조선(朝鮮) 문종(文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으나 강직(剛直)한 성품(性稟)으로 상관(上官)에게 미움을 받자 벼슬을 사직(辭職)하고 향리(鄕里)로 돌아와 후진양성(後進養成)에 진력했다.

사공비(司空 棐) 자(字)는 재문(載文). 조선(朝鮮) 성종(成宗) 때 선무랑(宣務郞)으로 개성부 직장(開城府直長)을 역임하였다.

사공적(司空 迪) 조선 성종(成宗) 때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사공정(司空 精) 1510 (중종 5) ~ 1566 (명종 21)  자(字)는 성집(聖執), 호(號)는 매원(梅園). 성품이 맑고 공평(公平)하며 학문(學問)이 돈독(敦篤)하였고,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친상(親喪)을 당하자 6년간 여막에서 시묘(侍墓)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에 천거되었다.

사공각(司空 角) 조선 중종(中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사공진(司空 診) 자(字)는 명휘(明輝), 호(號)는 은보(隱甫).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을 역임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사공회(司空 誨) 조선(朝鮮) 선조(宣조) 때 봉직랑(奉直郞)으로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역임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제(司空 悌)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사공습(司空 習) 자(字)는 학이(學而). 조선(朝鮮) 때 계공랑(棨功郞)으로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을 지냈다.

사공선(司空 銑)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

사공용(司空 鎔)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라 평구도 찰방(平丘道察訪)을 역임하였고,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증직(贈職)되었다.

사공양(司空 亮) 자(字)는 자명(子明). 조선조(朝鮮朝)에 승의랑(承義郞)으로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지냈다.

사공현(司空 顯) 조선조(朝鮮朝)에 직장(直長)을 지냈다.

사공기(司空 琦) 자(字)는 기옥(寄玉). 조선조에 조봉대부(朝奉大夫)로 홍문관 부응교(弘文館副應敎)을 역임하였다.

사공익(司空 杙) 자(字)는 군실(君實),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지(司空 祉) 자(字)는 사보(士甫), 호(號)는 계암(溪庵).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사공우(司空 祐) 자(字)는 사숙(士叔), 호(號)는 백암(栢庵). 조선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을 지냈다.

사공돈(司空 敦) 자(字)는 중여(重汝), 호(號)는 매와(梅窩).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균(司空 均) 자(字)는 후언(厚彦), 호(號)는 묵와(黙窩).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사공감(司空 坎) 자(字)는 익여(益汝).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사공인(司空 燐) 자(字)는 여성(汝聖), 호(號)는 청전(晴田). 조선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익(司空 熤) 자(字)는 명서(明瑞). 조선(朝鮮) 영조(英조)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현(司空 鉉) 자(字)는 중옥(仲玉). 조선(朝鮮) 순조조(純조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고, 전라감영 중군(全羅監營中軍)․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냈다.

사공철(司空 喆) 자(字)는 군현(君賢).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사공호(司空 皥)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을 역임하였다.

사공억(司空 憶) 조선조(朝鮮朝)에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사공식(司空 湜) 조선 때 군수(郡守)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