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주사씨시조(靑州史氏),사요(史繇),사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7 15:47 수정일 : 2018-03-04 11:41

청주사씨시조

사씨(史氏)는 중국 경조(京兆 :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때 사람인 사 질(史 佚)의 후예(後裔)가 관직(官職)의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씨(史氏)는 산동성 청주(山東省靑州) 출신인 사 요(史 繇)가 명(明)나라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올랐으나 세자(世子)와 함께 반역을 꾀했다는 모함을 받자 아들 형제 중 장남 중(重)을 데리고 1372년(공민왕 21) 고려(高麗)에 망명하여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위전리(京畿道坡州郡月籠面葦田里)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사요(史繇)를 시조로 받들고 그의 출신지인 청주(靑 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청주(靑州)는 중국(中國) 화북지방(華北地方)에 인접한 지명으로 고대 중국을 아홉으로 나누었던 구주(九州)의 하나였으며,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일대이다.

사씨의 본관(本貫)은 청주(靑州) 외에도 거창(居昌)․경주(慶州)․파주(波州)․청송(靑松)․충주(忠州) 등 16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해지는데, 거창 사씨(居昌史氏)는 고려 예종(睿宗) 때 귀화하여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서 여진(女眞)의 침입을 토벌하고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후 거창(居昌)에 뿌리를 내린 사 영(史 榮)의 후예로 알려졌으며, 청송 사씨(靑松史氏)는 청주 사씨의 시조 사요(史繇)가 우리나라에 건너올 때 중국에 두고온 둘째 아들 직(直)의 8세손인 세용(世用)이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明)나라 원군으로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된 후 조선(朝鮮)에 귀화하여 경북 청송에 터를 잡아 본관을 청송으로 칭관(稱貫)해왔다. 그러나 청주 사씨와 한 뿌리의 자손임을 알고 청주로 합본(合本)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

그후 시조의 아들 중(重)이 세종(世宗) 때 경상좌도 관찰사(慶尙左道觀察使) 를 지내고 1429년(세종 11) 대마도(對馬島) 정벌에 출정했다가 전장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들 극명(克明)은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역임하여 평택 현감(平澤縣監)을 지낸 의담(義淡)과 함께 가문(家門)의 기반을 다졌다.

그 밖의 인물로는 감찰(監察)을 지낸 득손(得孫 : 의담의 아들)과 도사(都事) 기린(麒麟 : 득손의 손자), 주부(主簿) 학수(鶴壽), 공조 참의(工曹參議) 원훈(遠勳) 3형제가 뛰어났으며, 도사 기린의 아들 맹련(孟連)은 형조 좌랑(形曹佐郞)을 역임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지낸 용(龍 : 주부 학수의 아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손동(遜東 : 공조참의 원훈의 아들), 형조 좌랑 영주(英周),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 종남(種男)과 함께 청주 사씨를 대표 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사씨(靑州史氏)는 남한(南韓)에 총 8,2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주사씨조상인물

사중(史 重) 자(字)는 간리(干里), 호(號)는 죽정(竹亭). 1429년(세종 11) 대마도(對馬島) 왜적정벌(倭敵征伐)에 출전(出戰)하여 큰 공(功)을 세웠으며,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사극명(史克明) 자(字)는 인명(仁明). 조선(朝鮮) 때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다.

사의담(史義淡)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사득손(史得孫)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사경현(史敬賢)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였다.

사종(史 宗)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사상순(史尙珣)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사기린(史麒麟)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사학수(史鶴壽)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사원훈(史遠勳) 자(字)는 근명(近溟), 호(號)는 임천(林泉). 조선(朝鮮)에서 공조참의(工曹參議)을 지냈다.

사맹련(史孟連)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사용(史 龍) 조선조(朝鮮朝)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사손동(史遜東) 자(字)는 경구(敬耈).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을 역임하였다.

사영주(史英周) 조선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사윤복(史允福) 조선에서 통사랑(通仕郞)에 이르렀다.

사신정(史愼貞) 자(字)는 경지(敬之). 조선 때 통사랑(通仕郞)에 올랐다.

사종남(史鍾男) 조선(朝鮮) 때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