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대구빈씨(大邱彬氏)

작성일 : 2017-04-17 15:16 수정일 : 2018-04-05 20:31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田來)

대구(大邱)는 영남지방(嶺南地方) 중앙부에 위치한 행 정중심지로 본래 신라시대(新羅時代)에 달구화현(達丘火縣) 또는 달불성(達弗城)으로 불리우다가 757년(경덕 왕 16)에 대구(大丘)로 개칭되고, 1419년(세종 1) 대구 군(大丘郡)으로 승격되었다. 대구(大丘)가 대구(大邱)로 개칭된 것은 지금부터 약 190년 전의 일이다. 1750년 (영조 26) 대구의 유생(儒生) 이양채(李亮采)가 대성공 자(大聖孔子)의 휘(諱)가 구(丘)자라고 하여 개칭을 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정조(正祖) 때부터 점차 대구(大邱)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 후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인하여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1949년 7월 대구시(大邱市)로 개칭되고, 1981년 7월 1일을 거해 대구직할시(大邱直轄市)로 승격하였다.

빈씨(彬氏)는 중국(中國) 성씨(姓氏)로, 청 (淸)나라 덕종(德 宗:1875-1908) 때 몽고(蒙古) 출신으로 원외랑(員外郞)올 지낸 민문(彬文)이 조선(朝鮮) 고종조(高宗朝)에 우리나라에 건너와 대구(大邱)에 정착(定着)한 것이 그 시초(始初)가 되며, 전해지는 본관(本貫)은 대구(大邱)와 담양(潭陽) 2본(本)이다.

그러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소목(昭穆)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인 구

196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92명으로 집계되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426가구, 1.8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2,5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